동화

마스크와 민들레 홑씨

유소솔 2020. 12. 12. 22:06

<성탄동화>                                                      

                                                         

"아유, 답답해. 미치겠네.”

마스크를 쓸 때마다 민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새해에는 민이가 6학년이 된다. 학교에서 제일 높은 학년이 되면 어린 동생들에게 형답게 의젓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 새로운 꿈을 세웠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꿈을 가로막은 것이 나타났다.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었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위해 3가지 긴급한 명령을 내렸다.                 

1. 누구든지 집밖으로 나갈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쓸 것

2. 비눗물로 손 자주 씻고, 밖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손 씻을  것

3. 10인 이상 모임은 안 되며, 누구와도 1미터 이상 거리두기를 할 것

 

민이는 2월 초에 개학하여 일주일에 하루는 마스크 쓰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다, 4월부터는 아예 등교하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로 선생님 가르침을 듣고 숙제는 온라인으로 써서 보낸다.

처음엔 컴퓨터가 서투른 것을 엄마가 잘 가르쳐 주셔서 이젠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아빠는 젊었을 때 20년 동안 학교에 다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셨으나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코로나가 심해 집에서 컴퓨터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계신다.

 

성격이 활달한 민이는 답답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10시에 시작되는 오전 수업과 점심을 먹고 3시까지는 컴퓨터에 매달려 수업하느라 겨우 참는다. 수업을 마친 후에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아빠에게 말해서 허락 받았지만 2가지 조건이 붙었다.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갈 것과 호수공원에 가서 나무나 꽃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1시간 안에 돌아오라는 것이다.

 

민이네가 3년 전 이곳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한 후, 1년에 두세 번 가족 산책을 했다. 이제 민이가 그 길을 따라 혼자 걷다가 공원 가까이에 이르니, 공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마다 모두 마스크였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도 눈에 띄었다. 유모차 아기들도 마스크를 쓴 것을 보니 가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5월 중순인데도 기온이 높아 여름날씨였다. 민이는 마스크 속에서 계속 더운 숨을 내뿜어서 인지, 얼굴에 땀이 송송 맺혀 얼른 마스크를 잠간 벗었더니 살 것 같았다. 민이는 공기를 크게 마시다가 공원지기 아저씨에게 , 마스크 얼른 써!”하는 책망을 듣고 얼른 마스크를 썼으나 그만 기분이 나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급히 오느라 그의 얼굴은 또 땀투성이였다. 마스크 안에도 땀이 젖었는데 벗을 수 없어 싫었다. 민이는 코로나가 미웠다.

 

저녁 식탁에 앉아서 민이가 오늘 호수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코로나를 죽이고 싶다고 화를 냈다. 그때 아빠가 수저를 잠시 놓고, 왼손을 입을 조금 가리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민아, 코로나 때문에 너만 아니라 엄마도 나도, 온 국민도, 세계 사람들도 고통이 많단다. 살다보면 어려움을 당할 때가 더러 있지만, 그때마다 불평만 할 게 아니라, 그 어려움이 주는 고마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단다.”

아빠, 고마움이라니요? 코로나나 무슨......?”

민이는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민아, 코로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많아 그 가족들이 얼마나 슬프겠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 되는 것도 있단다.”

여보, 코로나가 도움이 된다니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저도 그래요, 그렇지만 아빠 말씀도 한번 듣고 싶어요. 엄마.”

그러자 아빠는 또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씀을 계속하셨다.

하나는, 서툴던 우리 민이 컴퓨터 실력이 많이 늘었쟎아? 학교 공부도 하고.”

아빠, 그건 맞아요. 이젠 숙제도 척척 컴퓨터로 써 내는 걸요.”

둘은, 우리 가족이 오붓하게 종일 얼굴을 보고 말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것도 맞아요, 아빠엄마가 매일 직장 가셔서 내가 학교에서 오면 텅 빈 집 같아 TV와 핸드폰 가지고 놀았지만 사실 외로웠다구요. 이젠 참 좋아요.”

그랬구나. 마지막 하나는 밖에 나갈 때마다 마스크 쓰는 것 답답하지?”

그럼요. 봄에는 좀 참을 만했는데 여름엔 더운 콧김에 땀이 나서 미치겠어요.”

아빠는 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스크에도 교훈이 있다. 마스크를 쓰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많은 말을 하다보면 쓸데없는 말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니 이제 그렇게 못하도록 마스크를 쓰라는 거야.”

그 말에 엄마가 아빠처럼 한 손으로 약간 입을 가리고 말씀하였다.

"정말 그래요. 말을 하다보면 남 흉보거나 욕하는 말도 하게데요. 나부터 이제 말을 아끼고 꼭 필요한 말만 해야겠어요.”

그러자 민이가 엄마처럼 손으로 약간 입을 가리고 말했다.

엄마는 나한테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어느 때는 듣기 싫어 화나기도 했지만, 나 더러 더 잘하라는 사랑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그래? 내가 민이한테 너무 잔소리 한 것 사과할게.”                                               

그 말에 민이가 수저를 놓고 벌떡 일어나 두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고 흔들며 말했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최고예요!”하자, 아빠와 엄마도 앉아서 엄지척 했다.

나는 우리 민이가 최고!”

나도 우리 민이가 최고야!”

 

이튿날부터 민이는 엄마 말씀대로 더운 낮 시간을 피해 저녁 5시로 산책 시간을 변경했더니 덜 더워서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았다. 또 아빠 말씀 따라 호수를 둘러 싼 많은 나무와 꽃들을 살피기도 했다.

아빠는 민이 더러 나무와 꽃들을 보면서 이야기 하라고 하셨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언젠가 물었었다.

아빠, 어떻게 사람이 나무나 꽃들과 이야기 할 수 있어요?"

나무나 꽃들도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 한단다. 아빠는 어떤 나무나 꽃 앞에 가서, 방긋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하면, 나무의 말이 들려온단다. 노랑 민들레가 꽃잎이 지면, 하얀 씨앗들이 가벼운 홑씨들로 뭉쳐있지. 그때 다가가서 안녕, 너 날고 싶어?‘하고 물으면 , 날고 싶어요.‘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래서 내가 너희들 날게 해 줄게하고 입으로 훅! 불어주었더니 하늘로 훨훨 날다가 바람을 만나 멀리 가서 뿌리내리고 살면서 내년 봄에는 거기서 노랑민들레꽃이 많이 피어난단다.”

 

신이 난 민이는 이튿날 호수공원에 가서 나무 밭과 풀밭 여기저기를 살피다                         

마침내 홑씨만 남은 민들레를 찾을 수 있었다. 수많은 씨앗들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아빠처럼 웃으며 물었다.             

안녕, 너 날고 싶니?”했더니, “그럼. 날고 싶어.”하는 민들레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좋은 곳에 가서 뿌리내려 살아라.

그리고 내년 봄에 노란 꽃으로 여기저기 활짝 피어라.”하고, 입에 힘을 모아 훅! ! ! 불었다.

 그 순간 날개를 펴듯 민들레 씨앗들이 오르더니 바람을 타고 하늘로 높이 올라 멀리멀리 날아갔다.

- , 나도 저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고 싶다.

민이는 멀리 나는 민들레 씨앗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때는 저 씨앗들이 내년 봄에 여기저기에 노랑민들레로 필 것으로 생각하니, 좋을 일을 할 때처럼 마음이 아주 기뻤다.

 

이때부터 민이의 생각은 달라졌다. 올해부터 새롭게 살고 싶은 꿈이 있어서인지, 깊은 생각을 하다 우선 세상에 사는 약한 꽃들을 돌보기로 했다. 그래서 날마다 한 시간 호수공원에 가서 여기저기 민들레 홑씨를 부지런히 찾아서 이야기하고는 소원대로 온 힘을 다해 입으로 불어 하늘 저 멀리로 날려 보내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민이는 이제 마스크를 써도 별로 답답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똑 같은 일을 기쁘게 가을까지 계속했다.

 늦가을이 되어 민들레 홑씨가 더 이상 공원에 보이지 않았다. ‘이젠 무엇을 할까?’ 생각했는데 발밑에 붉고 노란 낙엽들이 떨어져 밟혔다. ‘, 이것이다!‘ 민이는 낙엽들을 주워서 크고 작은 나무들 밑에 빙 둘러 깔아주었다. 겨울 동안 헐벗은 나무들이 발밑에 깔린 낙엽이불로 추위를 막고, 또 나무의 거름이 된다고 배운 것이 생각난 것이다.

 

어느새 12월로 접어들었다. 12월이면 성탄절이다. 그런데 올해는 교회에도 못가고 주일에는 방송으로 예배드리는데, 어떻게 성탄절을 축하할지 궁금했다.

아빠, 이번 성탄절은 교회를 못 가는데, 어떻게 예수님 생일을 축하해요?”

글쎄다. 나도 목사님께 여쭤봤더니, 모여서 축하할 수 없으니 각 가정에서 방송으로 예배드리고, 우리가 도울 사람들을 위해 구제헌금을 교회로 보내면, 교회에서 해마다 돕는 장애인교회에 가서 성금 드리고 그들을 위로하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축하라고 하시더구나.”

그 말씀에 민이는 얼른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빠. , 작년처럼 내 돼지저금통을 깨트리겠어요.”                                         

맞아, 우리 민이 장한 일이다. 나도 성탄구제헌금으로 저축한 돈을 찾아야겠다.”    

엄마는요?” 민이의 말에 엄마도 10만원을 성탄구제헌금으로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웬일일까? 민이는 자꾸만 무엇 하나 빠진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빠, 이상하게 올해 성탄절에 무엇 하나 꼭하고 싶었는데, 생각이 안 나요?”

그래? 우리 민이가 작년보다 더 착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에 나도 네 엄마도 흐뭇하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충분하지 않겠니?”

그런데 아빠, 마스크 쓰는 답답한 세상에서 저 민들레 꽃씨처럼 하늘로 훨훨 날 수 있는 그런 꿈같은 성탄선물이면 좋을 텐데, 뭐 없을까요?”

그 순간, 번쩍! 하는 번개처럼 아빠에게 어떤 생각이 찾아왔다.

그건 말이다. 성탄절 축하 글을 보내는 거다. 네 친구들과 또 미국에 사는 네 고모네 식구들, 또 프랑스에 사는 네 이모네 식구들과 아이들에게 카톡을 보내는 거다. 예수님 안 믿거나 또 믿다가 그만 둔 사람들에게 예수님 생각나게 하는 일,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니? 네가 꿈꾸는 민들레 씨앗처럼 세상을 훨훨 날아가는 좋은 소식 아니겠니?”

, 참 좋아요. 바로 그거에요... 아빠, 그럼 언제쯤 보내면 될까요?”

“1210일부터 25일까지 성탄의 계절이거든. 이때가 좋겠다. 나도 이때 보내겠다.”

아빠, 감사합니다.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나는 성탄절 나의 꿈이 드디어 시작되는 군요.”

민이는 이때처럼 기쁘고 즐거운 때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빠의 지혜와 믿음, 엄마의 사랑 속에서 민들레처럼 소망 속에서 자라는 자기가 무척 행복함을 느꼈다. 오늘도 마스크 쓰고 호수공원 찾아가는 민이의 얼굴에 붉은 노을이 환하게 비춰왔다. 끝.

                                                                 - 월간 창조문예 게재(2020.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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