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미수를 향한 등정

유소솔 2020. 12. 17. 18:43

2019125일에 산수傘壽를 맞았다. 작년에 교회에서 자녀들 후원으로 <팔순> 기념예배를 간단히 드렸기에, 산수에도 특별한 기념행사도 없이 교회에 감사헌금을 드리고 조용히 지나면서도 지난 날을 돌아보니 어떤 감격스러움이 조용히 찾아왔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나이를 의식하지 않듯 내가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40을 넘으면서 부터였다. 그때 어느 회갑연에 갔다가 처음으로 나도 회갑을 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 길 가려면 많은 고개를 넘듯 인생길에도 넘어야 할 몇 개의 큰 고개가 있다. 그 고개는 회갑 이후부터 이름이 붙여진다. 회갑(60)- 고(70)- 희수(77)- 산수(80)- 미수(88)- 백수(99)라는 고개이.

 

고희는 고래희(古來稀)에서 온 말로 70세 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회갑연을 자녀들이 잘 베풀고 축하를 드리며 장수하시라고 덕담을 드렸다.  그러나 일단 고희 고개를 넘기면 만나는 고개마다 장수를 축하하는 뜻에서 목숨 수가 붙는다. 희수喜壽, 산수傘壽, 미수米壽, 백수白壽가 그것이다40에선 60 회갑이 꿈만 갔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새 두 고개 희수와 산수를 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서 새삼스럽게 울먹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폐가 약해서 감기도 자주 걸렸고, 타고난 지병도 아직 지니고 있다. 겨우 두 살 때였던가. 감기가 폐렴으로 전이되어, 아버지가 의사들과 무당까지 불러 굿을 했으나 가망이 없자 포기하고, 방 윗목에 밀어 놓았다.  이것을 안 아버지의 친구 박희정 의사가 밑져봤자 본전이니 한 번 시도해 본다며, 내 양 허벅지 네 곳을 칼로 찢어 수술하여 살아났다고 한다. 폐렴이니 가슴을 수술해야 하는데 허벅지 수술이라니, 나는 이상하게 여기며 자랐다. 커서 믿음이 생기자, 하나님이 살려주셨다고 믿고, 목욕할 때마다 허벅지 네 군데 수술자국을 보며 감사한다.

 

그 후, 몇 번의 사고와 죽음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는 기적도 체험했다. 특히 1967년 1월 8일은 잊을 수 없다. 그때 큰교회 전도사로 연말에 부임하여 사무총회를 준비하느라 밤 늦게까지 일하다 불을 끄고 잠을 잤다. 이튿날 새벽기도회 종소리를 듣고 벌떡 깨어났더니 이게 웬일인가? 연탄난로에 뚜껑 없이 열러 있어, 내 방안이 환했다. 나는 놀라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며 누구를 불렀는데, 마루에 연탄 뚜껑이 발에 밟혔다. 옆방에서 총각전도사의 난로를 관리하는 할머니 집사가 나오더니만 방안을 드려다보다 그만 놀라 주저 앉는다. 주위의 사람들도 웬일인지 하고 나왔다. 할머니 집사의 말이 연탄을 갈아 넣을 시간이인데 내 방에 불이 꺼져 있어서, 내가 깨거나 찬바람이 들어갈까봐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연탄뚜껑을 얼른 벗겨가지고 나와 마루위에 놓고 새연탄을 가지고 들어가 구멍을 맞춘 후에 열른 문을 닫고 나왔다는 것이다. 급히 서두는 바람에 연탄뚜껑을 닫을 생각을 못했다며, 자기를 죽여달라고 울었다. 나는 살아 있으니 죽지 않아도 된다며 위로 하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 중에 하나님의 보호하신 기적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감격했다. 

 

이 사건 후, 나는 한번도 강단에서나 사담 중에서도 이 사건을 얘기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내 자랑 같기도 해서였다.

고희 때인 2009년에 은퇴를 겸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기념문집을 발간했다. 여기에 그동안 나의 삶의 역정과 하나님이 위기에서 건지신 사건 3가지를 처음으로 간증으로 실었다. 또 내게 주신 은사로 문학적인 글과 다양한 활동을 적은 후, 지난날을 돌아보니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어느 덧 십년이 또 지나 산수를 지났으니, 어찌 또다시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큰 아픔도 있었으니, 지난 2014년 봄에 사랑하는 아내가 질병으로 먼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간 201438일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해마다 추모일에 가족들과 묘소 앞에서 내가 자작 추모시를 낭송을 했는데, 그간의 추모시가 나의 제2시집에 실려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21녀를 두었는데, 모두 믿음으로 잘 성장하여 성직을 맡아 일하고 있으며, 손주가 모두 6명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 다행히 큰 아들 내외가 홀로된 나를 모시겠다해서 함께 살게 되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닌가. 이제 미수 고개를 향해 천천히 오르고 있다. 이 등정이 마치게 될지, 도중에 하차 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뿐이다.

 

무슨 일도 처음 맞는 것은 기대가 되고 신비스럽기도 하다. 한 번도 늙어보지 않고 처음 늙어보는 것처럼 인생은 연습이 없기에 약간 염려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렵지 않은 것은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나는 8살에 온 가족이 함께 신자가 되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다윗의 시(23)을 무척 좋아했다. 6절 되는 시를 암송하고, 외로울 때는 어린이 찬송가 이일래 곡 <하나님은 나의 목자>를 혼자서 힘차게 부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솟는 것을 느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역정이 어찌 순탄만 하겠는가? 돌아보니, 어려운 일도 실패도 있었지만 비교적 평탄하게 산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 받음을 두렵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바로 임마누엘의 신앙이다. 그래서 나는 <임마누엘>이란 단어를 아주 좋아한다. 임마누엘로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로 이제 88한 미수고개도 감사한 마음으로 오르고 있다. 혹시 그 등정 중에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감사하면서 주님의 품에 안길 것이다. 처음 가보는 하나님의 나라, 생각만 해도 황홀하고 마음에 큰 설렘이 인다.

 

그래서 수많은 순교자 신앙인들이 비록 핍박과 고난에서도 기쁜 얼굴로 죽음을 맞았으며, 고 김활란金活蘭 여사도 장례식 때 장송곡보다 헨델의 <할렐루야>를 불러달라는 유언 따라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이 힘차게 불러져 장례식이 하나의 음악회가 되었다지 않은가? 나는 그분들보다 모든 면에 훨씬 미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들을 본 받으려고 기도하고 노력하니,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면서 날마다 무릎을 꿇는다.

                                                                                          -201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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