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자화상

유소솔 2020. 12. 14. 23:37

어렸을 때, 나는 이웃 사람들에게 바로 아래 동생과 자주 비교되기도 했다. 이웃 여자 어른들이 가끔 우리 집에 오면 내가 예쁘다는 사람, 동생이 예쁘다는 사람들로 나뉜다. 둘 다 남자이기 때문에 예쁘다는 말이 거북하여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미소 짓고 말았다. , 고교를 다닐 때까지 더러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이어서 여자 같으면 그런 말에 민감하겠지만, 남자라서 그런지 별로였다.

 

1955년 고교 시절에 처음 문학상에 당선된 후, 학교문예부원 활동을 했다. 마침 시내 6개 고교생 연합문학클럽에 참가하여 유명한 문인들의 문학 강연도 듣고, 또 자작시 낭송도 했다.

그 때 나는 어느 여학생으로부터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처음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본 사연은 역시 레브레타였다. 그래서 딱 한 번 만나 보니. 나의 외모가 너무 순하게 생겨서 반했다는 것인데, 나는 그 여학생의 외모가 별로 순하게 생기지 않아 돌아서고 말았다.

 

197430대 시절, 인천 어느 개척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잘 알지만 긴한 볼 일이 있어 박00 집사를 만나기 위해 인천중앙시장으로 갔다. 그의 가게는 처음이어서 그가 전화로 가르쳐 준 대로 시장 안의 긴 골목을 지나 그의 식품상회로 들어가 만나고 일을 보고나서 난 후, 오던 길로 다시 돌아왔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여름에는 간편한 점퍼차림이 내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 후, 다른 장소에서 박 집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웃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그때 내가 돌아가자, 이웃 가게 상인들이 달려와서 그 사람 형사 같은데, 뭐 당한 게 없느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형사가 아니라, 목사라고 했더니 안심하더란다. 그 당시 외제식품은 밀수품으로 단속했는데 식품상회들이 몰래 취급했기 때문에 가게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듯 했다. 여하튼 나는 그 상인들의 말에 쇼크를 받았다. “나를 형사로 보다니?”

                                                                                                             

199650대 후반에 우리 부부는 결혼 28주년 기념 여름휴가로 하와이 여행을 갔다.        

56일 간 여행사의 스케줄에 따른 것이지만, 평소 가고 싶던 여행은 즐겁고 의미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16명이었는데, 거의 직장에서 은퇴한 부부들이어서 조용하고 서로 배려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곳은 보트를 타고 가서 본 2차 대전의 발발지인 진주만이었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 때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에 일본인에 치를 떨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자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여행 중 어떤 분이 주인어른이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했느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목사님인데 아직 은퇴를 안 했다.”고 대답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놀랐다. “22년 만에 내 인상이 형사에서 교장으로 바뀌었구나.”

 

2001년 나는 한국00목사회 총무로 일했다. 당시 이 회는 초교파 기관으로 월간지를 발행하고 전국 교회의 광고찬조를 받아 운영했다. 나는 편집기능이 있어 월간지 주간을 겸했다. 당시 이 회를 설립한 이사장이 전권을 쥐고, 내가 부임하자 당시 사용하던 은행통장, 장부를 모두 가져간 후, 내 이름으로 새 통장을 만들고 사무원 회계장부도 모두 새로 시작하게 했다. 그래서 처음엔 무일푼으로 운영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6개월 후, 이사장의 이름으로 내게 고소장이 날아왔다. 명칭은 배임, 횡령 등 무려 5가지였다. 기가 막혔지만 나는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횡령액이 6천만원이라고 고소가 되어 있어, 나는 새 입출금 은행통장을 조사관에게 주며, 새로 시작한 6개월 동안 총 수입이 48백만이고 지출이 46백만인데, 6천만원 횡령이 말이 되는가? 하면서, 내 결백을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사장을 무고혐의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상습범이었다.

 

그 후, 저쪽 조사도 진행되면서 한 중재자가 나타났다. 이사장 측 요구가 무고혐의 고소를 취소하면 나에 대한 고소도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웃으며 먼저 고소자가 취소해야지, 왜 나중 고소자가 먼저 취소하느냐?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다. 먼저 걸었으니 먼저 풀어라. 그럼 나는 자동으로 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 말을 내용으로 한 각서를 교환날인 했다. 그 후 검찰에 가서 양쪽 모두 화해로 처리됐다. 이사장은 바쁜 듯 먼저 나갔다.

그때 검사가 내게 말했다. ”이 사건은 명명백백 무고죄로 처벌돼야 하는데 화해로 끝났습니다. 역시 목사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놀랐고, 돌아오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목사 된지 32년 만에 검사가 나를 목사로 인정하는군요.“

 

사람의 자화상은 시간이나 환경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이것은 내면의 변화를 따라 외모도 변하기 때문이리라. 링컨이 누구든지 40대가 되면 그 외모에 책임지라.”는 말은 명언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정신적 수련 위해 힘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고보니 그 이사장의 인상은 웃음이 없고 80세가 넘은 노욕에 찬 장사꾼인 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자화상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이 아니겠는가?

주님 말씀에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7:22-23) , 얼마나 목회자들에게 두려운 말씀인가?

 나는 이 최후의 나의 자화상을 위해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 기도하고,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매일 오전에 묵상하고 먹고 마신다. 더 나아가 하나님 사랑하듯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며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 상록수문학(201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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