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린이를 보면 무지개 본듯

유소솔 2020. 11. 19. 18:29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이 뛰나니

나 어려서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영국의 위대한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무지개라는 시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누구나 어린이처럼 마음이 뛴다. 새로운 희망과 뜨거운 삶의 의지가 솟아올라 평생토록 능동적인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니게 한다. 그래서 이 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내가 무지개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여섯 살 때였나 보다.

어느 여름 날, 친구들과 동네 조그만 개울가에서 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우리는 근처 집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신나게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우리는 다시 냇가로 갔다. 그 때 누가 소리쳤다.

“야, 무지개다!”

그 말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니, 세상에!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것이 둥글게 하늘에 걸쳐있다니, 놀라면서도 신기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지개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일본인 교사가 가르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한 한기 동안 배운 글은 생각나지 않고 수업 중에 수시로 사이렌 소리가 나면, 모두 방공호로 뛰어 들어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엎드린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해 8월 15일에 광복이 왔고, 그 날 오후에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비는 어른들의 뒤를 그냥 좋아서 따라다니다 소나기를 흠뻑 맞은 후, 하늘에 환하게 펼쳐진 무지개를 보고 "아!" 소리치며 친구처럼 반갑게 바라보기도 했다. 마치 저 무지개가 우리나라 해방을 가져다 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선지 나는 유난히 무지개를 좋아한다. 무지개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이상하게 설레었다.

모두 그런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고교생 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무지개는 그냥 아름답다고만 했다. 청년 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비가 온 후에 그냥 자연현상으로 생겨지는 게 무지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고 했더니, 나더러 아직도 어린이라고 놀렸다. 내가 아동문학가가 된 것은 어쩌면 무지개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는 참으로 멋진 창조물이다. 그들은 영구적 배터리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정열을 지녔고, 고양이 같이 끊임없는 호기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때로는 구경하던 개미를 갑자기 짓밟는 독재자의 심장을 지녔는가하면, 시인의 상상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토끼와도 이야기하고 별나라를 왕래하며, 꽃과도 사괠 수 있고 나비와도 함께 춤을 추는 요정 같은 인간들이다. 어린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호수처럼 맑고 고요한 빛에 태초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한없이 크고 넓고 끝없는 호기심과 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어떤 기대가 있고, 탐구가 있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엉뚱하기도 하다. 그들 속에는 미래가 담겨 있고, 하늘나라의 씨앗이 있어, 그 씨앗을 잘 움 트게 하면 이 땅에 하늘나라를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나 어린이 같아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어린이 같은 마음, 이것이 동심(童心)이다.

 

1952년 어느 날, 이탈리아 주둔 미군사령관의 아들 바비 힐 소년은 밀림의 성자 슈바이쳐 박사의 전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는다. 그는 즉시 자기 용돈으로 아스피린 한 병을 산 후, 유럽지역 미 공군 사령관에게 편지와 함께 약을 보내면서, 아프리카에서 나환자 치료에 힘쓰고 있는 슈바이쳐 박사의 병원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소년의 기특한 동심에 감동한 사령관은 이 편지를 프랑스 파리방송국에 보냈고, 방송국에서는 이 사연을 전 유럽에 방송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슈바이쳐 박사의 병원에 보내달라며 돈과 약품을 보내와 한 달 만에 40만 불 어치의 돈과 약품이 모아졌다.

마침내 의약품을 가득 실은 비행기 두 대가 아프리카에 날아가 슈바이쳐 박사가 일하는 병원 근처에 백여 개의 낙하산으로 맨 의약품 상자를 떨어뜨려 환자들 치료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사실을 안 슈바이쳐 박사는 “어른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린이가 했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필자가 1957년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구약 창세기를 배우다가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에 놀랐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교수님이 신학적으로 설명했지만, 필자는 문득 그것이 '동심'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는 고교생 때 교내 문예현상모집에 동화를 써서 당선된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심의 반대는 사심(私心)이다. 사심은 이해(利害)가 섞인 어른들의 마음이다. 이 사심은 사회 공동체를 어지럽게 하고 파괴하는 폭탄과 같다. 좋은 사회는 사심이 일절 배제되고 동심처럼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고 공평하고 공의로운 사회를 일컫는다. 이것이 역사상 가장 최선의 사회라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까.

그래서 동심은 사심에 물든 어른의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청량제이며,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는 필자의 생각처럼 동심이야 말로 하나님 형상의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뜻에서 시인 월드워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해가 갈수록 어른들이 주도하는 인류의 역사는 어둡고 혼란스럽고 절망적이다. 일찍이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모든 어린이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품고 계속 태어나고 있다.”고 읊은 적이 있다.

따라서 인류의 참된 미래는 바로 동심을 지닌 어린이에게 있다. 순수한 동심을 지닌 어린이들을 바르고 참되게 가꾸어주는 책임은 어른들의 몫이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과 더불어 아동문학가들이 동시나 동화를 통해 동심을 개발하고 동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보람과 사명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이를 볼 때마다 마치 무지개를 본 듯 마음이 셀레인다.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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