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아까맹그로

유소솔 2020. 12. 26. 22:31

 

장마 비가 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습니다.

아침부터 한여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사람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 집을 떠났습니다.

들이나 밭에서 사는 농작물들은 오랜만에 뜨거운 태양 볕을 받자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지개를 활짝 켜면서 열심히 키를 키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 더워서 못 살겠어요.”

 

 기산봉 기슭 선희네 고구마 밭에 사는 꼬마 강아지풀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밭고랑 아래 고추밭에 사는 형 강아지풀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막내야, 이 고추밭으로 와라. 우리 키 크는 운동을 함께 하자.‘’

고추밭에는 강아지풀 5형제가 살면서, 날마다 몸을 움찔움찔 키웠습니다. 그래서 몸이 통통해졌고 키도 제법 커졌습니다. 고추나무처럼 키 키우는 게 소원이지만 아직 어림없습니다.

이제 장마가 그쳤으니 햇빛을 받아먹고, 우리도 어서 저 고추나무처럼 자라자.”

첫째 형은 동생들과 함께 오늘도 키 키우는 운동을 했습니다.

형이 엇 둘, 엇 둘하면, 그 소리에 맞혀, 동생들은 함께 몸을 움찔, 움찔했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살이 찌고, 키도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낮잠을 자던 엄마가 깨어났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희들 그만두지 못해? 죽고 싶어 그러니?”

아이고, 깜짝이야. 엄마, 우리가 왜 죽고 싶어요? 살려고 이러는 거지요.”

그럼요. 고추보다 더 키가 커서, 잘 살려고 하는 거지요.”

엄마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애들아, 우리는 강아지풀이야, 강아지풀!”

그 말에 모두 이상한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강아지풀? 그래요. 우리는 강아지풀이라구요. 그런데요?”

너희들, 강아지를 본 일이 있지?”

. 장마 전에 선희 아가씨가 목에 방울을 단 네발 달린 귀여운 짐승을 여기에 데려온 적이 있었지요. 그 짐승이 강아지라면서요?”

그래, 맞아. 강아지를 보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 그래서 사람들은 강아지를 좋아한단다. 그렇지만 강아지가 크면, 개라고 부른단다.”

개라 구요?”

그래, . 오늘 같이 더운 날에는 사람들이 개를 잡아먹는단다.”               

               

잡아먹는 다구요? 아이, 끔찍해.”

아이들은 모두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너희들도 잡혀 먹는 것, 싫지?”

그럼요. 싫지요.”

그러니까 너희들도 잡혀 죽지 않으려면 키를 키우지 말란 말이야 !”

엄마, 그건 강아지니까 그렇지요. 우리는 풀이니까 다르다 구요.”

큰 형의 볼멘소리가 거의 울상이었습니다.

, 다르다고? 얘들아, 우리 이름이 뭐지? 강아지풀이야. 강아지 같이 작고 귀엽다고 붙여진 이름이야, 그러니 우리는 강아지처럼 살아야 한단 말이야.”

강아지처럼 살아요? 어떻게요?”

강아지가 작아서 사람에게 귀염을 받지 않니? 우리도 작은 몸으로 숨어서 살아야해. 개처럼 키 크다고 고개를 쳐들면, 사람들 눈에 금방 띄어 죽게 된단 말이야. 이제 알겠니?‘

.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하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까부터 엄마와 형의 망을 듣던 둘째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습니다.

엄마, 사람들은 우리만 보면 왜 죽이려고 해요? , 원수라도 졌나요?”

원수진 건 없다. 사람들이 고추나 고구마를 심었는데, 우리 같은 풀들이 곁에 자라면서 영양분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미워하는 거지.”

그럼. 우리는 사람이 심지 않았어요?”

또 셋째가 바짝 고개를 쳐들면서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열매도 없는 풀을 누가 고생하면서 심겠니?”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에 어떻게 생겨난 거예요?”

아이들의 엉뚱한 물음에 엄마는 당황했습니다.

, 그건 말이다 ---. 자연히 생겨난 거야, 우리는

자연히요?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자연히 생겨날 수 있어요?”                               

셋째의 물음에 그만 엄마는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사람들이 우리를 심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지?”

,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분이 모든 세상을 지으셨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어.”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이요? 그 분이 어디에 있는데요?”

저 하늘에 계신다지, 아마.”

엄마 따라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파아란 하늘이 맑고 시원했습니다.

저 하늘에 누가 산다고요? 그건, 믿을 수 없어요.”하는, 첫째의 말에

맞아. 눈에 보이지도 않은데 하나님이 어디 있어.”하고, 다른 형들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 때 막내가 나섰습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믿고 싶어. 안 믿으면, 우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거든.”

바로 그거야, 우리 막내의 말이 백번 맞다”‘하고, 엄마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게, 그렇게 되는 말인가?”

형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엄마는 이 때다싶어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해서 김 맬 때마다 우리를 뽑아서 없앴단다. 그렇지만 우리는 수 천년동안 세상으로 뻗어가며 살아왔지.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아니?”

모르는데요.”

아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궁금한 듯 눈을 반짝였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우리는 강아지처럼 작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살아가는 거였어. 이 말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만약 우리 다섯 형제 중 넷이 잡혀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만 산다면 우리는 계속 자손을 많이 퍼뜨리며 살 수 있단다. 우리는 그처럼 끈질긴 목숨들이지. , 이제 모두 그 자리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법을 연습해보자.”

엄마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습니다.

, 강아지처럼 몸을 땅에 딱 붙여라. 고개를 쳐들지 말고. 숨도 크게 쉬지 말고.”

엄마의 명령에 아이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땅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라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땀이 몸에 송송 배었습니다. 한동안 고통을 잘 참던 아이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 엄마. 난 안 할래. 죽으면 죽었지 못하겠어요.”하고, 첫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나도, 나도, 나도----,”하면서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가 큰형을 따라 모두 일어났습니다. 엄마 곁에 있는 막내만은 땀을 뻘뻘 흘리며 조용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래. 그만 하자. 그렇지만 사람들이 김매러 올 때 신호에 맞춰 잘 해야 한다. 알았지?”

신호가 뭔데요?”

글쎄, 뭐라고 할까? 아까처럼 한다면, 우리 모두 살 것 같은데 말야.”

그럼, ‘아까처럼하고 소리치시지요.”하고, 막내가 거들었습니다.

아까처럼? 좀 이상하다. , 사람들은 그 말을 아까맹그로라고 하던데

“아까맹그로?"

이 말은 이 지방 사람들 말이다만 그게 좋겠다.”

마침내 엄마가 결정을 했습니다.

이제 장마가 끝났으니, 사람들이 김을 매러 올 거야. 그 때 내가 아까맹그로하고 소리치면, 아까 연습한대로 잽싸게 엎드려야 한다. 모두들 알았지?”

, 엄마하고, 막내 혼자만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난 죽어도 못하겠어요. 엎드리니까 숨이 턱턱 막혀요.”                               

첫째의 말에 나머지 네 형들도 못하겠다고 버티었습니다.

아까맹그로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잡혀서 죽는단 말이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기는 매 한 가지인데요. .”

얘들아. 그러면 안 된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우리 모두 죽는단 말이야.”

에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하고, 첫째가 축 늘어졌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엄마는 멀리서 땅이 쿵쿵 울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나마나 밭주인 선희네 식구들이 김을 매러 오는 것이 뻔합니다.

얘들아, 사람들이 온다. 조심해야한다. 알았지?----- 아까맹그로!”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땅에 납작하게 엎드리자, 막내도 강아지처럼 엎드렸습니다.

뜨거운 땅 기운이 숨을 턱턱 막았지만, 막내는 아까 연습한대로 참고 또 참았습니다.

형들은 엉겁 길에 엎드리긴 했으나 뜨거운 땅 기운이 싫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점 크게 울려오더니, 여자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선희 아부지. 장마 속에서도 올해 고추농사가 이만치 한 게 다행이네요.”

글쎄. 고추는 작년만큼은 되는 것같은디, 고구마가 어쩔까 걱정이요.”                                

고구마요? 비를 배터지도록 먹었으니 통통 하것지요.”

 여기저기 살피던 선희 엄마가 놀라며 소리 질렀습니다.

오매, 무슨 놈의 강아지풀이 이러크롬 크다냐? 강아지풀이 아니라, 개풀이네 개풀.”

글쎄 말이요. 이놈들 때문에 우리 고치농사 다 망칠 뻔 했네. 다 싹 뽑아버립시다.”

그럽시다.”

                                                                                                                 

이 날, 고추밭에서 엉거주춤하던 강아지풀 5형제는 사람들의 눈에 금방 띄었습니다. 그래서 뿌리 채 뽑혀 밭고랑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금방 말라죽었습니다.

고구마 밭에 납작 엎드려 있던 엄마 풀도 아뿔사, 선희 엄마의 호미에 걸려 뽑혔습니다. 다행히 키 작은 막내만은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았고, 또 호미질에 걸리지 않아 무사했습니다.

엄마 풀은 죽어가면서 막내에게 말했습니다.

막내야, 너만이라도 살아 다행이다. 아까맹그로 몸을 항상 낮추고, 뿌리는 땅 속 깊이 감춰라. 겨울을 잘 견뎌야 봄에 많은 풀들이 네 몸에 나서----, 우리는 그렇게 사는 거란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 엄마 ---.”

막내는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습니다.

푸른 하늘에는 태양만이 계속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월간문학(2002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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