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1934~ 2022)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나는 이 작은 한 줄의 詩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 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聖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詩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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