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소년이 겪은 6.25 (2)

유소솔 2021. 6. 21. 01:20

 

그 해 10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자은에 상륙한 국군이 온다는 말에 환영하기 위해 면사무소로 통하는 20릿 길을 두 줄로 길게 늘어섰다. 이장의 부탁으로 맨 앞에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 목포에서 피란 온 교회의 남자 어른들 네 분이 섰다. 우리 가족은 그 뒤에 서있었다.

 

마침내 무장한 다섯 명의 국군용사가 나타나자, 우리는 “대한민국 만세!”하고 소리 높여 웨쳤다.

그런데 그 중 한분은 총이 없는 우리 교회 김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이 먼저 아버지를 알아보신 후, 달려와서 피란 온 어른들과 서로 몸을 껴안고 기뻐하셨다. 부산의 피란에서 돌아 온 목사님이 섬으로 피란 간 네 집사들 가족들이 궁금해서 목포해군부대를 찾아 ‘국군 설무원’이란 노란색 완장을 두르고 함께 찾아 온 것이다.

 

그 날 오후에 마을 공터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다섯 사람 중 한 분인 김 목사님이 연사로 나서서, 그동안 전쟁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즉 6월 25일 새벽에 38선 전역에 탱크로 무장한 북한군이 불법으로 남침,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를 막던 국군이 후퇴하여 서울을 빼앗기고 경상도 낙동강을 경계로 싸움을 했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지면 우리는 멸망하기 때문에 부산과 대구로 피난 간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목사님들이 뭉쳐 한 달 동안 큰 교회에서 밤 세우며 우리나라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의 지휘로 지난 9월 2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서울을 다시 찾고 지금 평양을 향해 진격 중이니, 곧 통일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 소식에 사람들 모두 기쁘게 일어나 “대한민국 만세!”를 소리 높여 세 번 부를 때 나도 불렀다. 모임이 끝난 후, 국군용사와 목사님이 정해진 시간 때문에 다른 섬을 찾아서 떠났지만, 나는 비로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해군이 목포도 수복했으므로, 교회 어른들이 돌아가기로 합의 하셨다.

이튿날 우리 피란가족들이 큰 목선을 타려고 면 부두로 짐을 지고 걸어가다가 길가의 큰 나무 하나가 불에 까맣게 타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동네사람들이 빨갱이 짓을 한 사람을 붙잡아 나무에 묶어 불에 태워 죽였다고 누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떨리며 소름이 돋아 걸음을 빨리 재촉했다.

 

그날 밤 우리는 항해허가를 받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섬을 출발하여 다음날 이른 아침에 목포 북항에 도착하여 15분 걸어서 집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 집 방문이 부셔지고 방안 유리창도 많이 깨져 있었다. 알고 보니, 집을 지키던 작은 형이 우리 식구가 모두 죽었을 것이라는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 듣고 홧김에 울면서 부셨다고 했다.

 

우리 집 뒤뜰에는 전쟁을 모르는 노란 국화와 몇 가지 꽃들로 만발했고, 강낭콩과 가지, 호박들, 또 나무들은 붉은 감과 대추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석 달 만에 집에 안기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집으로 큰 형의 전사통지서가 배달되자, 우리의 통곡소리로 며칠 동안 집안은 암울했다. 우리는 다시 깊은 슬픔 속에서 전쟁의 고통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다시 학교에 복교해서 공부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친구들 몇 명의 자리가 비워있어서 씁쓸했다. 며칠 후 낮에 비행기가 삐라를 살포했다. 집 뜰에 떨어진 몇 장을 주워보니, 아군이 38선을 돌파하고 평양을 탈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계속 북진하고 있으며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승리의 글자와 함께 지도에 아군이 진격하는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높이 들고 “대한민국 만세!”하고 세 번 웨쳤다.

 

전쟁에서 아군들이 연전연승을 한다는 기쁜 소식에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여 온 국민이 바라던 남북통일이 곧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우리 국민들은 연일 들려오는 승전보를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으로 들으며 마음이 들뜰 정도로 기뻐했다.

어느 날은 우리 국군 1사단 용사들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 수통에 강물을 떠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 보냈다는 기사와 사진이 우리가 보는 서울신문에 실려 우리 가족도 기뻐했다. 모든 국민들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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