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목사 같은 판사 문기선 장로 1.

유소솔 2021. 10. 19. 00:02

 

 

그는 조선 말기인 1896년 서울 당주동에서 출생하다.

부친은 구한말 고종황제의 시종무관으로 재직하다 한성경시청 총순, 강원도 경무관, 파주 군수를 역임한 관리의 가문이다. 그는 서울에서 매동소학교, 한성고보 사범과를 지원, 어린 학생들부터 애족심을 길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에 따라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하고(1911) 소학교 교사로 발령 받아 근무했다.

 

동족이 이유없이 차별 받자 교직을 떠나 법학도가 되다.

그때는 조국이 일제에 합병당한 일정시대로,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일어나 항거했고 체포되면 재판도 없이 사형하는 등 조선인들이 차별 학대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교사를 사직하고 처음 개강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수석으로 입학, 졸업했으나 일본인 졸업생만 법관으로 발령하고 조선인을 발령하지 않은 차별하자, 할 수 없이 소학교 교사로 복직하였다.

 

1922년 처음으로 조선변호사 시험제도가 생기자,최고 득점자로 변호사가 되다.

그가 응시하여 최고 득점자가 되어 변호사 자격을 받아 억울한 조신인의 무료 변호사로 활동하여 그의 철저한 법 해석에 따른 변호로 억울한 조선인들을 구제했다. 그러나 갑자기 결핵 4기라는 의사 진단에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요양 차 함경도 청진의 공기 좋은 산자락으로 퇴촌했다.

 

1925년 어느 날 교회의 종소리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교회를 찾아갔다.

그날의 목사님 설교는 유대왕 히스기아가 죽을병이 들자 하나님께 회개하고 눈물로 호소하자 하나님이 병을 고쳐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시켜주었다는 구약의 역사적인 설교였다. 그 설교가 자기에게 하는 설교인 것 같아 그는 목사님 방에 가서 장시간 신앙에 대해 토의를 하면서 차츰 그의 냉철한 두뇌에 긍정적 반응이 왔다. 그는 목사님으로부터 성경책을 선물로 받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하여 한 주간에 신구약성경 3번이나 독파한 후, 인류의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섭리하심을 믿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기적이 나타 폐결핵이 완치가 되다.

평소에는 10분 간격으로 가래나 피가 계속 나왔으나 이상하게 예배하는 한 시간 동안은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왼쪽 폐는 전부 굳었고, 오른쪽 폐도 2/3가 굳어있어 폐기능이 불가능해 죽음만 기다리는 진단을 받았으나 생명의 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믿음이 생겨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며오직 기도에만 매달리고 충성했다.

그 후 그는 얼굴빛도 좋아져 교회의 집사가 되어 청진 읍에서 사무실을 얻어 변호사를 개업했다. 그래서 억울한 동족을 위해 법원에서 냉철한 법 판단을 기본으로 열열한 변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했다.

 

‘민족 변호사’라는 소문이 함경도에 퍼졌고, 두만강 건너 만주에 살던 한민족들에 알려져 만주쪽 독립군변호의 주문을 받고 수차례나 방문한 적도 있다. 1931년 만주 만보산 사건은 일본이 한인과 중국인들의 싸움을 붙인 것인데, 화가 난 중국인들이 조선과 중국으로 왕래하는 압록강 열차를 폭파했지만, 만주 방문하고 돌아오는 열차를 탄 그의 칸만 무사한 기적도 나타났다.

 

1930년 후반에 일본은 조선의 교회에 일본의 신사참배를 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기독교에 대한 일대 타격이었다. 독립운동의 중심에 기독교인이 반드시 있었기에 기독교 제거작전의 하나였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교회는 완강히 반대하다 저들의 총칼 앞에 큰 위협을 당하고 옥사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교회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3개 교단뿐인데, 일본의 집요한 협박에 장로교, 감리교, 천주교는 협력했고, 성결교는 성도들 각자 신앙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결의했다. 그래서 박봉진 목사 등 10여 명의 성결교 교역자들이 옥중에서 처담한 고문을 받다가 순교했다.

 

문기선 변호사는 ‘신사참배 절대 반대‘하는 신앙그룹에 들어가 활동하다 발각되어 지명수배를 받았다.

그는 만주로 피신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동지들에게 “인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좌지우지하시니, 불의한 일본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그래서 약소국가는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살게 된다.”고 계속 전도하고 힘을 실었다.

마침내 1945년 광복이 되어 그는 귀국하므로, 국가를 위한 큰 헌신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