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맨발의 성자 ‘선다 싱’

유소솔 2021. 12. 22. 00:02

 

 

 '선다싱'은 1889년에 인도의 푼잡 지방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힌두교의 한 종파인 시크교의 신자로, 비교적 경제가 넉넉한 가정이었다. 그는 경건한 부모에게서 시크교의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으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시크교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

 

그는 8살에 초등학교 밋션스쿨에 입학하였다. 

그의 고향에는 초등학교가 없고, 영국 선교사가 세운 사립학교가 하나 있었다. 할 수 없이 그의 부모는 기독교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성경공부 시간에 노골적으로 기독교가 싫어 선생님이 주는 성경을 찢어버리는 등 말썽을 부렸다.

 

그가 14세 때 사랑하는 어머니가 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어머니 낫게 해달라고 한 달동안 간절히 기도했지만 어머니가 죽게 되자 시크교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허전한 마음에 우울허무함이 찾아와 며칠 동안 정신적으로 헤매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배운 예수님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예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말씀에 그가 열심히 기도했다. 

그런데 다음날 어둠 속에서 빛의 옷을 입은 분이 나타나 그와 인도 말로 대화했다.

“누구세요?”

”나는 너의 죄를 씻어주려고 피 흘려 죽었다가 너에게 영생을 주려고 부활한 그리스도 예수란다.“

“아, 예수님!”

“앞으로 네 앞길을 내가 인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할 것이니, 늘 나를 찾아 기도하여라.“ 하고 사라지셨다.

이 사건으로 그의 삶은 180도 변화되어 진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확신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전도자로 나섰다.

 

그는 복음이 전혀 들어갈 수 없는 티벳 선교를 꿈꾸며 기도했다.

티벳 선교여행은 위험 부담이 많았다. 폭설, 강풍, 맹수들의 공격, 티벳 사람들의 배척 등 생명을 노리는 위험들이 늘 있었다. 그는 겨울 외에는 늘 맨발선교를 떠났다. 그러다보니 늘 발에 상처가 나고 피를 흘렸으나, 그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려 죽으신 예수님 생각할 때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맨발의 성자‘라고 부른다.

 

어느 날 눈보라 속에 티벳 선교여행을 혼자 떠났다.

다행히 티벳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들이 산길을 걷고 있을 때 눈더미 속에서 어떤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가서 보니 험한 눈길을 가다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이었다. 선다싱은 동행자에게 '번갈아 가며 업고 가자'고 요청했으나 동행자는 '그러면 다 죽는다'며 혼자 앞서 가버렸다. 그는 그 사람을 업고 비틀거리며 산길을 등반하였고, 등에 업힌 사람은 선다싱의 뜨거운 체온으로 깨어나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의 사랑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참 산길을 가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선다싱과 처음 함께 동행하며 쓰러진 사람을 함께 업고 가자는 선다싱의 제의를 거절했던 티벳 사람이었다.

그는 벌써 얼어 죽어 있었다. 선다싱은 이런 일을 계기로 “자기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남을 위해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는 주님 말씀을 확신하였다.

 

선다싱의 거듭된 선교에 티벳지역 사람들도 복음의 열매를 서서히 맺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티벳인들의 모진 박해로 수차례나 죽을뻔한 고초 겪었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자, 선다싱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전도집회 초청을 받아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는 33세에 소원인 예루살렘 성지순례도 했다.

 

선다싱은 1929년 그의 나이 40이었을 때에 티벳 선교를 떠났다가 실종되었다.

영국 수색대가 동원되어 그의 행방을 샅샅이 찾았으나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의 시신이라도 찾아보았으나 흔적도 없었다. 그의 최후는 하나님만이 아실뿐이었다. 마치 구약의 모세처럼...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