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감동 이야기

한국의 어머니, 서서평(徐舒平) 선교사

유소솔 2022. 2. 3. 00:05

 

 

여인이 말을 타고 전라도 일대를 한 달 간 순회한 뒤 이런을 남겼다.

"이번에 만난 여성 500명 중 이름이 있는 사람은 열 명뿐이었습니다.지금이 1921년인데도, 조선여성들은 큰 년이, 작은 년이, 개똥어멈으로 불립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저의 큰 기쁨입니다."

간호 선교사로 조선에 온 엘리자베스 쉐핑 (Elisabeth Johanna Shepping, 한국명; 서서평 徐舒平; 1880~1934)이 직접 쓴 기록이다.

 

1920년 서서평은 독일 출신의 미국 선교사로 한국 최초의 ‘간호선교사’로 왔다.

당시 조선은 가난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전염병으로 병자가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몹씨 어려운 이들에게서 눈과 마음을 뗄 수 없었던 그녀는 서양식 삶을 고수하던 여러 선교사와 달리 조선말을 익혀 '서서평'이라 이름 짓고, 한복을 입고 된장국을 먹으며 조선의 헐벗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선교사에게 주어진 하루 식비는 3원이었다. 

그러나 서서평은 10전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모두 먹이고 입혔다.

그는 걸인들을 데려와 씻기고 옷을 사 입혔고, 환자가 버린 아이를 양 아들로 삼아 길렀다. 그렇게 데려다 키운 아이가 14명이었고, 아이 낳지 못해 쫓겨나거나 오갈데 없는 여인 들 38명도 모두 거두어 보살폈습니다.

 

서서평이 광주에 한국최초의 신학교  이일학교(裡一學敎)를 세웠다. 

이 학교는 1961년 전주로 이전하고 지금 한일장신대학교로 개명하여 전도자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최초로 한국인 간호사 양성학교를 세워 배출했으며,  조선 간호부회(대한간호협회 전신)를 세워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한국 간호사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녀는 조선에서 이렇게 10년 간 헌신하다 석 달 휴가를 받아 미국에 가서 어머니를 만났다.

코리아 선교사로 떠난지 10년만의 만남이니 얼마나 모녀 간 반가웠을까? 그러나 고된 생활에 얼굴에 찌든 딸을 본 어머니가 놀라며 "얼굴이 부끄러우니 빨리 코리아로 돌아가라!" 하며 매몰차게 외면할 정도였다고 한다.

 

                                             강냉이 가루 2홉, 현금 7전, 반쪽짜리 담요 하나

서서평이 22년간의 조선에서 선교사의 생활은 언제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엇이나 전부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는 삶이었다. 그의 굶주림에 주위에서 걱정을 하자, 이런 말을 했다. "내일 내가 먹기 위해 오늘 굶주린 사람을 외면하면 그것은 죄악이다." 이렇게 철두철미 예수님 정신으로 살다 마침내 그 자신은 54세에 영양실조세상을떠났다. 때 마지막으로 남긴 유품의 전부가 위에 적힌 대로 '강냉이가루 2홉, 현금 7전, 반쪽짜리 담요 하나'가 전부였던 것이다.

 

이상한 것은 반쪽짜리 담요였으니, 무슨 사연일까?

이것은 거적떼기를 덮고 자는 사람에게 그의 담요 반쪽을 찢어주고, 남은 반쪽으로 가냘픈 몸을 가린 채 이 땅의 삶을 그렇게 마친 것이다. 참으로 그위 희생정신과 헌신의 삶 앞에 머리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라도 광주의 한 교회에서 그의 장례식을 할 때에 울기 시작한 성도들의 울음소리에 장례식을 잘 집행할 수 없었다.

장례식을 겨우 마친 후,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천여 명의 사람들은 계속 통곡하며 한 목소리로 계속 이렇게 외치고 외쳤다고 한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e)”

그로부터 90여년이 흐른 오늘까지도 서서평이 묻힌 광주광역시 양림동 뒷동산에는 그의 참사랑과 헌신을 추억하는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평생 쉬지 않고 일하던 그녀를 잠시 쉬게 한 침대 끝에는 위의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개화기에 예수를 닮은 수많은 외국선교사들의 말없는 사랑의 헌신은 한국의 문화와 종교 발전에 큰 발판이 되었음을 온 국민들이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