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춘원 이광수와 빅토르 위고

유소솔 2020. 12. 18. 20:08

 지난 2005년이던가.

힌국민족문제연구소에서 과거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발표함으로 사회를 들끓게 했다. 그들은 좀 늦었지만 명단발표는 친일청산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며, 일제의 잔재청산을 위해 온 국민이 나서야한다고 했다.

과거 일제日帝 치하 40년간 고통의 세월은 우리 민족의 한이었고, 반만년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러기에 한민족으로 일제의 탄압정책과 만행에 동조하거나 협력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민족의 이름으로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아직 친일문제로 처벌을 받은 자 하나도 없고, 그저 명단을 공개하므로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뿐이다.

 

그 치욕의 명단 중에 우리 문인들의 관심을 끄는 저명한 문학인들이 있었고,         

특히 우리 민족적 소설가로 일제 시 우리민족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끼어있었다.

그의 소설 무정’, ‘유정’, ‘사랑등은 당시 나라와 자유, 희망마저 잃고 방황하는

우리 민족에게 좌절을 통해 민족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함으로 삶의 의미와 생존의 의지를 함께 추구할 수

있게 했다고 평론가들은 지적한다.

 

그러기에 최근 EBS교육방송이 네티즌들에게 한국소설 베스트 20’ 선정에서, 그 많은 소설 중에 춘원의 무정이 단연 수위를 점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우수했고, 그는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문학가로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일제의 수감생활의 고통과 협박에 못 이겨 민족개조론이란 글을 통해 일제에 협력하는 오점을 남겼다. 광복 후, 그가 친일 반민족자로 낙인을 찍힌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파리의 노트르담등의 작품을 통해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유럽과 세계인들에게 많은 감화를 준 소설가였다.

그의 인도주의와 평등사상은 기독교 신앙으로 연유한 것이었지만, 비판적 전기 작가인 그레이엄 록조위고의 인생 본질에는 어둡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깊은 동정심,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적 본능을 추적하는 통찰력이 있었다.”고 인정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인류애로 가득 찼다.

 

빅토르 위고에게도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루이 나폴레옹이 1851년 왕정복귀를 위해 친위 쿠테타를 일으키자 이를 항거하다         

체포하려하자 해외로 피신, 19년간 고난의 망명생활을 했다.

그 곳에서 그는 나폴레옹 3세를 비판한 징벌시집을 발표함으로 전제군주정권이

무너지게 하는데 일조했다.

마침내 그는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나자 귀국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빈민구제, 언론의 자유보장, 여성과 아동의 권리신장 등 활동하여 조국의 민주사회 건설에 헌신할 수 있었다.

위고가 탄생한지 벌서 200년이 훨씬 지났지만, 프랑스의 모든 초. . 고등학교가 새해의 첫 수업을 위고의 작품읽기로 시작하고, 많은 기념행사가 계속 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는 국민영웅이요 세계적 작가에 대한 국민들은 긍지를 지니고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와 춘원 이광수를 비교해 볼 때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문학적 재능에 대해서는 우열은 가늠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문학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실천적 결단력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빅토르 위고와 같이 국민들의 긍지를 심어주는 자랑스러운 작가가 드물어 아쉽다.

인간의 심성발달을 도우며, 인류의 이상을 노래하는 문학가들의 글은 아름답고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에 따른 삶이 일치되지 않을 때 그에게서 받은 감화는 반감되고, 도리어 인격적으로 경멸의 대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글과 삶의 일치문제는 모든 문학가들이 평생토록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거룩한 과제임과 동시에 나의 적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알고 분투해야 함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계간 크리스찬문학(200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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