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1902-2000) 105인 사건으로 다년간 옥고를 겪고 나온 남강 이승훈(李昇薰) 선생이 계셨다. 그는 1919년 기미독립운동 33인 중 한 분으로서 민족의 참 애국자이셨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남의 집에 기탁하여 살았지만 지혜와 재능이 많았고. 매우 부지런하고 총명하므로 자수성가하여 그는 40세 때에 큰 사업가가 되었다. 그가 평양에 잠시 머물었을 때 미국에서 돌아 온 도산 안창호(安昌浩)의 연설을 들었다. 그 내용은, 지금 우리나라가 국운이 점점 기울어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른지 알 수 없다고 한탄하면서, 우리 민족이 갱생(更生)하려면 이제 두 가지에 힘써야 한다. 하나는 교육을 일으켜 인재를 양성하고, 또 하나는 공장을 세워 경제를 부흥케 하는데 있다고 역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