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훈(1901-1936)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 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 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