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4

미수를 향한 등정

2019년 1월 25일에 산수傘壽를 맞았다. 작년에 교회에서 자녀들 후원으로 기념예배를 간단히 드렸기에, 산수에도 특별한 기념행사도 없이 교회에 감사헌금을 드리고 조용히 지나면서도 지난 날을 돌아보니 어떤 감격스러움이 조용히 찾아왔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나이를 의식하지 않듯 내가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40을 넘으면서 부터였다. 그때 어느 회갑연에 갔다가 처음으로 나도 회갑을 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 길 가려면 많은 고개를 넘듯 인생길에도 넘어야 할 몇 개의 큰 고개가 있다. 그 고개는 회갑 이후부터 이름이 붙여진다. 회갑(60)- 고희(70)- 희수(77)- 산수(80)- 미수(88)- 백수(99)라는 고개이다. 고희는 고래희(古來稀)에서 온 말로 70세 넘기가 어렵다..

수필 2020.12.17

윤동주와 송몽규의 우정

며칠 전, 한국명시선집을 읽다가 윤동주의 ‘서시’에 이르렀다. 그냥 외울 수 있기에 그의 ‘서시’를 보지 않고 소리로 낭송가의 심정으로 낭송을 했다. 그 순간 문득 그의 ‘시비’가 세워진 중국 용정의 대성중학교의 뜰이 나타나며 어떤 감회에 잠시 젖기도 했다. 나는 2001년에 중국동포사랑방문단의 일원이 되어 북경과 조선족 자치주 길림성의 수도 연길延吉을 다녀왔다. 문인으로 구성된 우리 방문단은 스케줄에 따라 북경에서 조선족 문학인들과 만나 시로 서로 교류한 후, 조선족의 문학적 고향이고, 옛 우리조상의 독립운동 무대였던 용정龍井을 다니며 감동에 젖은 하루를 보냈다. 특히 민족의 시인 윤동주尹東柱에게 사상과 문학을 일깨워준 옛 은진(오늘의 대성)중학교를 방문하면서 운동장 중앙에커다란 바윗돌에 새겨진 그의 ..

수필 2020.12.15

나의 자화상

어렸을 때, 나는 이웃 사람들에게 바로 아래 동생과 자주 비교되기도 했다. 이웃 여자 어른들이 가끔 우리 집에 오면 내가 예쁘다는 사람, 동생이 예쁘다는 사람들로 나뉜다. 둘 다 남자이기 때문에 예쁘다는 말이 거북하여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미소 짓고 말았다. 중, 고교를 다닐 때까지 더러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이어서 여자 같으면 그런 말에 민감하겠지만, 남자라서 그런지 별로였다. 1955년 고교 시절에 처음 문학상에 당선된 후, 학교문예부원 활동을 했다. 마침 시내 6개 고교생 연합문학클럽에 참가하여 유명한 문인들의 문학 강연도 듣고, 또 자작시 낭송도 했다. 그 때 나는 어느 여학생으로부터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처음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본 사연은 역시 레브레타였다...

수필 2020.12.14

어린이를 보면 무지개 본듯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이 뛰나니 나 어려서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영국의 위대한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누구나 어린이처럼 마음이 뛴다. 새로운 희망과 뜨거운 삶의 의지가 솟아올라 평생토록 능동적인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니게 한다. 그래서 이 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내가 무지개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여섯 살 때였나 보다. 어느 여름 날, 친구들과 동네 조그만 개울가에서 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우리는 근처 집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신나게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우리는 다시 냇가..

수필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