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머니, 가장 위대한 스승

유소솔 2021. 5. 15. 11:08

 

1948년 5월 15일,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에서 인구 80만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건국했다.

일찍이 사울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황금기를 누렸으나 솔로몬 사후에 남북으로 분단되어 살다가 BC 722년 북조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BC 586년에 남조 유다왕국마저 바벨론 제국에 멸망당해 백성들이 모두 포로로 끌려가는 큰 고난을 당했다.

 

유다 백성이 70년 만에 석방되었으나 대부분은 세계로 흩어졌고, 예루살렘에 돌아 온 일부가 폐허가 된 조국을 힘들어 재건했으나 당시 페르시아-헬라-로마로 이어지는 제국들의 식민지로 계속 유린되었다. 그러다 서기 70년에 로마에 항거하다 완전히 멸망, 유대인은 그곳에 살지 못하게 쫓아내므로 그들은 무려 2천년 동안 세계로 흩어져 숨어 살아야 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가는 곳마다 메시아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혐의 때문이었다.

 

더구나 근대에 이르러 1차 세계대전에 1백만 명, 2차 대전에는 힛틀러에 의해 무려 6백만 명이 유럽 각지에서 체포되어 학살을 당하는 대 참사를 겪었다. 그런 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일어나 일부가 고토로 돌아와 그곳에 살던 민족을 쫓아내고 고토에서 실로 2천년 만에 눈물어린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한 것이니, 놀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포되자, 세계 각처에 살던 유대인들이 속속 귀국하였고, 여의치 못한 사람들은 국가 재건에 필요한 많은 재물과 물자를 아낌없이 보내와 이스라엘의 국토개발과 재건 사업이 매우 빠르게 진전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각처에서 귀환하는 사람들을 그냥 모두 받지 않고, 유대인 심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엄격한 심사를 했다. 그것은 유대인 민족의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혈통을 증명하는 각종 문서와 증인 등 엄격한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이스라엘 국민이 될 수 있었다.

 

이에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한 입국 대상자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부모가 모두 유대인인인 자, 둘째는 부친만이 유대인인 자,

셋째는 어머니만이 유대인인 자 등이다.

첫 번째의 사람은 순수 유대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허락이지만,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자 중 누구를 유대인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위원들이 오랜 시간 열띤 주장과 토론을 벌였으나 결국 세 번째인 어머니가 유대인인 자를 선택하였다.

 

이 결정은 참으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민족 거의가 부계(父系) 혈통을 중요시하는 관례를 크게 벗어난 놀라운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이 의문은 곧 풀렸고, 세계인들이 이해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유달리 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의 선민(選民)의식과 신앙, 유대인의 정신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통해서만이 후대에 전승할 수 있다는 전통적 확신 때문이다. 이는 혈통을 중시한 자연적 민족의 형성보다는 교육을 통해서만이 민족의 형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스라엘 교육의 원뿌리인 쉐마교육(신 6: 4~9)이었다.

 

쉐마(들으라)로 시작된 말씀에 따라 어머니는 아기 젖 뗄 때가지 약 3년 동안 신앙교육의 기초를 확립한다. 그 후 아버지가 가정의 교사가 되어 철저하게 가르친다. 기초 교육이 세워져 있어 그 위에 신앙교육이 잘 이루어진다. 

한 예로, 가장 이상적 인물인 모세사무엘, 디모데가 어머니의 무릎에서 이 쉐마교육을 통해 이루어진 인물들이다.

모세는 직접 체험자로서 쉐마교육이 그에 의해 선포되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약 1/3이 작은 민족 유대계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어머니야 말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 세계 각국은 유대인의 교육을 연구하기 위해 교육인재들을 예루살렘대학으로 유학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5월 가정의 달,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가정 중심의 축(軸) 인 우리 어머니를 새삼 우러러 보자.

동시에 우리 어머니들의 무릎적 스승의 사명에 대한 뜨거운 소명과 각성을 크게 기대해 본다.

                                                                                   - '오늘의 크리스천'신문(1989. 5. 15) 게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타령  (0) 2021.09.13
대한민국은 국가인가, 정부인가  (0) 2021.08.17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0) 2021.05.11
독도 분쟁과 인내의 전략  (0) 2021.04.20
에펠탑과 십자가  (0) 2021.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