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63

충청도식 여유

- 김향기(사상과문학상 대상) 천안역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서 차문을 너무 세게 닫았더니 운전수 왈, -그렇게 살살 닫아서 문이 박살 나것슈? 신호가 바뀌어도 출발 않는 앞 택시에 빵빵 소리 내지 않고 서두루지 않으며 -저 자가 대간 헌가벼, 졸고 있는 개비여 태조산 연수원에 시간 맞춰 가야기에 좀 빨리 가달라고 운전수께 당부하니 -그르케 바쁘시다면 어제 오지 그랬슈.

시조 2023.06.19

골고다 언덕에서

- 정려성(197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하늘에 계시던 님 세상에 내려 오사 십자가 짊어지고 골고다 오르실 때 하늘도 슬픔에 겨워 궂은비만 뿌렸다. 오르다 쓰러지고 쓰러져 다시 걷는 님 가신 길을 따라 핏자국 선연한데 태양도 두 눈을 감고 목을 놓고 울었다. 연약한 두 어깨에 우리 죄 다 지시고 한 걸음 또 한걸음 옮기신 그 자리에 들꽃만 안타까운 듯 고개 숙여 피었다.

시조 2023.04.07

택배로 온 개미

- 유소솔 시골 삼촌 보내주신 택배 짐 풀었더니 잘 익은 붉은 사과들 환히 웃고 반기네. 오느라 며칠 동안에 무척 어두웠나보다. 그런데 사과 사이에 허둥대는 개미 하나 먹이 찾다 그만 갇혀 서울까지 왔나본데 어쩌나 먼 길 천릿길 새끼들 기다릴 텐데 재빠른 개미 달래서 유리병 들게 하고 답례의 배 상자에 개미 풀어서 넣고 외삼촌 함께 살라고 고향으로 보냈지. -----------------------------------------

시조/동시조 202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