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목소리 - 정완영(1919-2016, 한국문학상 수상)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시조 2023.05.28 (22)
보리 - 권갑하 처절히 짓밞힐수록 퍼렇게 일어서는 농 익어도 꼿꼿한 까끄라기 지존으로 삭막한 식민지 고갯길 땅을 짚고 넘었지. ------------------------- 시조 2023.04.21 (20)
골고다 언덕에서 - 정려성(197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하늘에 계시던 님 세상에 내려 오사 십자가 짊어지고 골고다 오르실 때 하늘도 슬픔에 겨워 궂은비만 뿌렸다. 오르다 쓰러지고 쓰러져 다시 걷는 님 가신 길을 따라 핏자국 선연한데 태양도 두 눈을 감고 목을 놓고 울었다. 연약한 두 어깨에 우리 죄 다 지시고 한 걸음 또 한걸음 옮기신 그 자리에 들꽃만 안타까운 듯 고개 숙여 피었다. 시조 2023.04.07 (13)
개화開花 - 이호우(1912-1970)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시조 2023.03.18 (19)
봄 오는 소리 봄 오는 소리 정완영(한국문학상 수상) 별빛도 소곤소곤 상추씨 소곤소곤 물 오른 살구나무 꽃가지도 소곤소곤 밤새 내 내 귀가 가려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시조 2023.03.13 (25)
복수초 - 유소솔 새해에 가장 먼저 핀 일원화라 부를까 찬 2월 눈 제치고 핀 설령화라 부를까 복수초 노란 금잔화 봄의 첫 전령사지. 얼음 뚫고 솟아난 저 생명력을 보라! 봄맞이 의욕에 찬 쏙쏙 솟는 힘찬 기개 꽃말은 영원한 행복 기다린 자 행복하리. 시조 2023.02.17 (30)
택배로 온 개미 - 유소솔 시골 삼촌 보내주신 택배 짐 풀었더니 잘 익은 붉은 사과들 환히 웃고 반기네. 오느라 며칠 동안에 무척 어두웠나보다. 그런데 사과 사이에 허둥대는 개미 하나 먹이 찾다 그만 갇혀 서울까지 왔나본데 어쩌나 먼 길 천릿길 새끼들 기다릴 텐데 재빠른 개미 달래서 유리병 들게 하고 답례의 배 상자에 개미 풀어서 넣고 외삼촌 함께 살라고 고향으로 보냈지. ----------------------------------------- 시조/동시조 2023.02.13 (25)
하늘 새 길로 - 유소솔 커어텐 열어젖혀 바라보는 새벽하늘 소리 없이 내려는 창밖의 함박눈이 내 집 앞 아스팔트길 새 공사 시작했네. 분노와 거짓들과 욕심자취를 따라 모두모두 지우고 하얀 길 닦으면서 새로운 길로 가라며 손짓하는 듯하네. 해 뜨기 전 하늘 길 펼쳐지고 있는데 해 뜨면 청소부들 검은 길 복구하리니 그 틈새 열어 놓으신 하늘 새 길 우러르네. 시조 2023.01.28 (27)
연탄 집 - 모상철(시조시인) 허리에 탈이 도져 찜질하며 누우신 아빠의 빈 지게를 가만히 져 봅니다 땀 절고 닳아진 멜빵 어깨를 누릅니다. 가풀막 골목 끝집 혼자 사는 할머니 연탄 떨어졌겠다는 아빠의 걱정으로 엄마는 한 대야 이고 추운 길 나섭니다. 시조 2023.01.26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