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8

칠월(이수인)

장맛비 그친 하늘 위에 꽃구름 둥둥 피어나고 풀벌레 소리 높여 노래하는 할머니 모시저고리보다 햇빛이 더 쩡쩡한 칠월. 피자두 적포도 청포도 복숭아 한입 물면 새콤달콤한 달 바람이 인색하게 불어도 넉넉하게 살찌우는 칠월, 한 해 반은 감사로 보내오니 남아 있는 소망은 접지 않게 하소서. 멀리서 오고 있는 가을을 위해 나지막히 기도하게 하소서.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유안진)

유안진(1942~ ) 슬퍼지는 날에는 어른들아, 아이로 돌아가자! 별똥 떨어진 그리운 그곳으로 간밤에 떨어진 별똥 주우러 가자. 사랑도 욕스러워 외로운 날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물어보자 개울가의 미나리아재비, 물봉숭아 어린 꽃이 산기슭의 패랭이 엉겅퀴 산나초가 어째서 별똥 떨어진 그 자리에서 피는가를 어른들아, 어리석은 어른들아 사는 일이 참말로 엄청 힘들거든 작고도 순수하게 경영할 불도 알아야지 작아서 아이 같은 고향마을로 가서 밤마다 떨어지는 별똥이나 생각다가 엄마 누나 무릎 베고 멍석자리 잠이 들면 수모도 치욕도 패배도 좌절도... 횃불 꼬리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찬란한 별똥별이 되어주지 않을 꺼나?

청포도

청포도 - 이육사(1939년 작)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유월의 장미

유월의 장미 -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유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 밝아져라 - 밝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들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때마다 싱싱한 잎사귀도 돋아난다고 유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자꾸 따라오라고 자꾸 말을 걸어오네요.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키워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