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5

가을의 노래(임승천)

가을은 믿는 자의 문 앞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막 돌아 온 고향 추광을 그리는 발걸음 오솔길로 행하는 단풍들 그래 내 푸른 하늘은 더욱 더 높고... 청명한 눈동자 희고운 연인의 얼굴에서 주님의 기도소리 듣고 싶은데 성문 앞 돌 밑 귀뚜라미가 생의 눈 뜨임을 재촉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열매는 익어가는 것이다.

임께서 부르신다면

임께서 부르신다면 신석정(1907~1974) 가을에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신다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신다면 ...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신다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신다면...

빈 의자

빈의자 - 이재창(1949~ ) 가을이 노랗게 떨어진 늙은 은행나무 아래는 휑하니 비어있는 의자 하나 낮은 몸 잔뜩 구부린 채 낯선 이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녹슨 다리에 굽은 허리 색 바래 검버섯 피어있고 한쪽 귀퉁이는 이미 썩어 흉하게 내려앉아버렸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오지도 않는 이를 기다리다 홀로 늙어버린 빈 의자 방황하는 젊은이라도 사랑에 지친 가장이라도 짝 잃어 외로운 노인이라도 누구든지 받아주고 싶은데 언제든지 받아줄 수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더 늙어 보이는 빈 의자엔 가을 햇살만 노랗게 내려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다 기다란 그림자만 앉아있다. - 국민일보 신춘문예 대상(2018)

노릇노릇 가을볕에

노릇노릇 가을볕에 - 김완기 노릇노릇 가을볕에 논두렁 벼이삭이 물들면 우주를 닮은 씨앗 하나 그 신비를 선물하신 분께 노오란 물감 살짝 묻혀 가을 편지 쓰고 싶다. 노릇노릇 가을볕에 떡갈나무가 연갈색 풀어 놓으면 가지마다 토실토실한 열매 이토록 탐스럽게 키워주신 분께 연한 갈색 무늬 바탕에 깔고 가을 편지 쓰고 싶다.

시월엔

시월엔 - 권은영 시월엔 빨간 우체통 하나 내 마음에 들여 놓고 싶다. 푸른 하늘 모셔다 편지를 쓰면 서먹했던 마음들도 풀어질 거야 받을 사람 성향에 따라 노란 잎 붉은 잎 모아 고운 가을 편지를 쓰면 따뜻한 정 가고 오겠지. 사과향 모과향 석류향까지 실어 그리운 마음 함께 보내면 잊혔던 친구도 화알짝 팔 벌려 맞아 주겠지. 시월엔 축복이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 되리라.

가을 편지

가을 편지 - 고은(1933 -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