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5

첫눈初雪 -채희문

그대 다시 오고 있구나 처음 그때의 숫처녀 그대로 그 순결한 살결 그대로 그대 하얗게 오고 있구나. 온 세상 새롭게 장식하듯 하얀 꽃무늬의 레이스 커튼을 내리듯 그 동안의 목마름, 기다림과 그리움까지 포근히 감싸며 흠뻑 적셔주듯 저 높고 높은 하늘과 이 낮고 낮은 땅 사이를 비로소 하얀 만남으로 이어주듯 퍼엉 펑, 퍼얼 펄 한량없이, 그지없이 우리의 가슴 속에 잃었던 동화의 나라 열어주며 성처녀처럼 성결하게 첫눈맞춤처럼 청신하게 신선한 눈짓으로 오고 있구나 신성한 숨결로 내리고 있구나.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요즘은 ‘위드 코로나’ 시대입니다. 영어로 with(위드)는 ‘함께’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함께’ 간다고 할 때, 좋은 것만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점과 더불어 나쁜 점 또한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녀와 함께 살기도 하고, ‘질병’과 함께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한쪽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양쪽을 다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생은 이런 모든 면을 안고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것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능력의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

이런 목사님도 계십니다

어느 가난한 목사님이 학교에 가까운 지하실에 월세로 교회를 개척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지하 예배당 입구 계단에 아침, 저녁으로 침이 하얗게 깔려있고, 담배꽁초가 쌓이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이상하다 싶어 숨어서 지켜보았다. 이웃에 있는 여자 중, 고등학교의 학생인 어린 담배꾼들의 소행이었다. 목사님은 처음에 그들을 야단 치려다가 여학생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햇볕정책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담배꽁초를 치우기 시작했다. 힘든 것은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며 뱉어놓은 침을 닦는 일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래! 이 애들을 교회에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을 했다. 다음 날 목사님은 귤을 예쁜 접시에 담아 놓고 옆에다 재떨이 대신 큰 스텐리스..

12월의 기도(석우 윤명상)

추위가 당연해지는 12월처럼 사랑이 식고 냉랭해지는 세상에서 나를 불태워 작은 온기라도 나눌 수 있는 모닥불 같은 존재가 되게 하소서. 활활 불타오를 때뿐 아니라 타고 남은 숯불이 되어서도 누군가의 언 가슴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가슴이 되게 하시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내리쬐는 한 줄기 햇살처럼 소망을 잃고 방황하는 이의 상한 마음에 비추는 한 줄기 따뜻한 볕이 되게 하소서.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쳐서 복종시키는 동장군 같은 단호함으로 언제나 양심은 깨어있게 하시고 눈보라 속에서도 묵묵히 봄을 기다리는 나목처럼 은혜의 때를 소망하는 겨울나무 같은 의지를 갖고 12월을 살아가게 하소서.

만추(오인숙)

사무친 것이 가을바람이 되어 나무를 만지면 단풍이 들고 사람들 옷깃을 스치면 방금 지은 들밥 같은 시간도 물드네. 바람은 세상 구석구석을 휘돌며 물들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제 슬픔의 색깔로 물들이고 열매란 열매 모두 꽃처럼 매달아 견뎌온 세월을 보여 주네. 뿌리 내리고 살았던 땅에 감사하고 머리에 이었던 하늘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두 손 가벼이 털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은 아름답네. 지난 계절 내내 뜨거웠던 열정 저녁 어스름으로 잦아지고 모든 것은 한 때 지나가는 것임을 한 잎의 낙엽이 흩날리며 가슴에 찌익 밑줄을 긋네.

은행을 털다(홍성훈)

서울 누나의 결혼소식에 며칠째 걱정만 하는 엄마 아빠 - 이제 은행이라도 털어야겠소!“ 아빠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는 말없이 한숨만 쉰다. 착한 아빠가 은행을 털다 붙잡히면 감옥에 갈 것이다 겁이 났다 큰 자루를 들고 집을 나서는 아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몰래 쫓아간다 아빠는 천천히 뒷산 은행나무 아래로 걸어가신다.

단풍 연가(이선님)

꽃 샘 추위에도 따가운 여름 태양 아래서도 그리움의 이슬 머금고 당신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새 가을바람과 함께 당신이 오신다는 형형색색 엽서를 받고서 깊어가는 가을 밤 설레임과 기쁨으로 잠 못 이루고 내 마음 두근거립니다. 수줍은 얼굴이 노을빛으로 붉어지고 내 가슴 뜨거워져 불꽃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오시려거든 애타는 내 마음 적셔 줄 빗물로 오십시오. 당신이 오시려거든 한 겨울 꽃바람 품은 눈꽃으로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