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

이어령 교수의 후회

- 그의 마지막 수업에서 남긴 말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그 삶이 풍성해진다. 나이 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얘기 듣고, 얘..

2023.10.30

가을 햇볕에

​ - 김남조(1927-2023)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 참다 못해 가슴 찟고 나오는 비둘기 떼들, ​ 들꽃이 되고 바람 속에 몸을 푸는 갈숲도 되네. ​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 지고 ​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2023.10.28

벌레 울음

- 신규호(1939- 2022) 9월부터 울어대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벌레들 그것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몰라도 가을벌레소리가 울음으로 들리는 건 사람들 모두 슬프기 때문이다. 삶이 즐겁다 하는 마음보다 슬프다 하는 마음이 인생을 값지게 한다는 역설 나도 잘 울어야 할 것임을 이 가을 깨닫게 하는 저 벌레소리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시인은 ‘인생이 슬프다’ 고 여긴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의 삶에서는 고난이나 시련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것으로, 잘 울어야 할 것을 벌레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닫는다.(류)

2023.10.27

가 을

​ 유안진(서울대 명예교수)​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 보다도 마른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면 눈 감은 채 고즈넉이 그려보고 싶어라 ​ 어둠이 땅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써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사람은 앉아 있어야 할 때 앉아서 두 손안에 얼굴을 묻고 싶을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거라.

2023.10.20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2023.10.02

가을의 기도

- 조재선(시인) 가을에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게 하소서. 절정에 꽃다운 마음 떨구는 단풍처럼 가을에는 산허리 걸린 노을이 되게 하소서. 산골짜기 언덕마다 밝게 타오르네 가을에는 모든 것 내어주는 허수아비 되게 하소서. 넉넉한 황금빛 들판이 되게 하소서. 쪽빛 하늘 멀어져 간 그대 그 깊은 마음 헤아릴 길 없어 가을에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바람이게 하소서. 가을에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바람이게 하소서.

2023.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