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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풀꽃 시인)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에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 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 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 길도 걸어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2023.08.25

그날이 오면

심 훈(1901-1936)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 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 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2023.08.14

태풍과 기도

- 유소솔 태풍 ‘카눈’이 재빠른 바람과 엄청난 비를 몰고 한반도를 향해 북상한다는 예보에 우리의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특히 커다란 산 밑에나 바닷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안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의 이기주의를 먼저 용서하소서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 건너시다 갑자기 이는 돌풍과 폭풍에도 “바람아 잔잔 하라!” 한 마디로 진압하셨던 권능의 주님 '카눈'의 위력이 약해지거나 비바람의 방향을 텅 빈 곳으로 바꿔주시는 은혜 허락해 주시기를 수요기도회로 모여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국민들에게 피해 없기 원하지만 어쩔 수 없어도 최소화 되어 서로 돕고 사랑하는 멋진 시간들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소서.

2023.08.10

8월의 시

이해인(1970 등단, 수녀시인)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넣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 선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2023.08.01

풀씨 하나

김소엽(대전대 석좌교수) 이집트 피라미트 속에서 발견된 수천 년 전 풀씨 하나 인간의 살은 녹아져 흙이 되고 뼈도 삭아서 흙을 더욱 기름지게 하고 흔적도 자취도 없이 한 줌 흙으로 되돌아 간 사람 사람 사람들... 하나, 질긴 생명력으로 반만 년을 살아 견딘 너 풀씨 하나여! 시험관에서 발아를 시켰더니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 싹을 돋우어 냈다니 반만 년을 참아 견딘 오, 생명의 신비여 누구를 기다렸음인가. 대체 누구를 그토록 사랑해서 그 오랜 세월 인간의 비극적 역사 그 허망의 슬픈 무게를 네 작은 몸뚱어리에 싣고서 못 볼 꼴 다 보면서 침묵 속에서 어둠에 갇혀 쪼그만 네가 살아왔더란 말이냐 그러나 네가 눈을 떴다니 나는 네 눈이 두렵다 어떤 풀이 되어 자라날지 나는 네 파아란 잎이 무섭다.

2023.07.31

이만 천 구백 일(60년)

- 회갑 맞이 돌아보며 문순희(국민일보 신춘 밀알상) 지나 온 60년 눈 비비고 돌아서니 아름다운 길에 감사의 발자취 남겼습니다. 넉넉하게 살지 못했지만 풍요롭지 못한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버거운 문제에 묻혀 살았지만 가슴 깊이 심어준 지혜로 풀지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날이 많았지만 내 영혼과 육체는 독수리 날개 치며 상승하였습니다 죄 지음을 쉬는 날이 없었으나 늘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죄의 종 되지 않았습니다 크고 작은 사탄의 공격을 받았지만 두려워서 떨거나 나약하여 쓰러진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족함 앞에 서 있었으나 십자가의 능력으로 채워지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못 하였으나 하나님을 감동케하는 찬양을 쉬지 않았습니다 명예, 성공, 권력자의 아내로 서 있지 ..

202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