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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女人이 되어

- 노천명(1911~1957)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女人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진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짓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2023.06.07

낡은 철모

- 1950년 6.25를 생각하며 - 채명현(학도병 국가유공자) 철모르던 청소년 시절 풍전등화의 조국 붉은 총탄에 유린당하던 산하 처절하게 짓밟히던 아, 다급하던 그때 두 손 불끈 쥐고 군대 찾아 군번도 없이 겨우 총쏘기 연습 30분 만에 반공전선에 뛰어든 십대 용감한 학도병들 어머니! 최후의 한 마디 남기고 이름도 없이 떠나간 그대들이여! 군번 없고 이름도 없어 아무 보상도 못 받고 그대들이 남긴 흔적은 휴전선 너머 낡은 철모와 한 줌 흙이 아니던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 그 큰 뜻 겨레 사랑 그 불타는 정열이 이 강토 곳곳에 아직도 피로 젖어 있는데 고귀한 희생자 십대의 영령들 하나님, 고이 품어주소서. - 제59회 현충일 낭송시(2015.6.6.)

2023.06.06

6월

​ 황금찬 (1918- 2018)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으니 ​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소리 신록에 젖었다 ​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 ​

2023.06.04

6월에는

- 임숙희 푸름이 짙어지는 6월에는 싱그러운 미소로 아침을 맞이하겠습니다. 새해의 다짐은 피고 지는 꽃들의 향연에 몽롱했을지라도 뜨거운 태양을 품고 힘차게 6월의 숲으로 가겠습니다. 새들의 노랫소리 들려오는 찬란한 6월을 지켜온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겠습니다. 산들바람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초록물결 넘실대는 숲을 가꾸어 뙤약볕에 몸살을 앓는 7월 그대에게 그늘이 되겠습니다.

2023.06.01

어머니의 길

김후란(1960년 현대문학 등단) 그 옛날 오백년 전 어린 율곡 손잡고 한양으로 떠나던 신 사임당 오죽헌에 남겨둔 어머니 생각에 돌아보고 돌아보던 눈물의 오솔길 그 길 따라 애틋한 어머니들 보릿고개 이겨내려 함지박 이고 가족 생각 종종걸음 장터 오가던 고달픈 발자국 남겨 있네. 아, 그 마음 깊어라 강릉 핸다리 넘어 대관령 찬바람 속 유구한 사모정공원길 효심과 덕성으로 꿈을 키워낸 영원히 빛나는 어머니 길

202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