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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심女心

- 노천명(1911-1957) 새벽하늘에 긴 강물처럼 종소리 흐르면 으레 기도로 스스로를 잊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한 번의 눈짓, 한 번의 손짓, 한 번의 몸짓에도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하루를 살며 하루를 반성할 줄 아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즐거울 땐 꽃처럼 활짝 웃음으로 보낼 줄 알며 슬플 땐 가장 슬픈 표정으로 울 수 있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주어진 길에 순종할 줄 알며 경건한 자세로 기도드릴 줄 아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 일제강점기에 황해도 장연 출생으로 이화여전 영문과 재학 중 에 등단하여 ‘사슴’이란 시가 유명하다. 그는 졸업 후 신문사 학예부에 근무하며 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여 ..

2023.07.28

비 오는 날

- 정호승(소월문학상 수상) 젖은 우산을 접듯 그렇게 나를 접지 말아줘 비 오는 날밤 늦게 집으로 돌아와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그대로 접으면 젖은 우산이 밤새워 불을 지피느라그 얼마나 춥고 외롭겠니. 젖은 우산을 활짝 펴 마당 한 가운데 펼쳐놓듯 친구여 나를 활짝 그대 안에 갖다 놓아줘 풀 향기를 맡으며 햇살에 온몸을 말릴 때까지 그대 안에 그렇게

2023.07.13

옥수수

- 용혜원(목사 시인) 먹구름이 몰고 올 여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판으로 모여든다. 할아버지 수염을 달고 익어가는 옥수수가 가난한 연인의 치마폭에 쌓여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알맹이 하나하나에 예쁘디예쁜 개구쟁이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차 있다. 신나는 것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멋진 노래가 되어 입안 가득히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여름이 오면 멋진 하모니카를 신나게 불고 싶어진다.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