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이 엄마 따라 나선 여름방학 미국여행 여기저기 구경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주일에 한인교회 가는 것 30여 명 작은 교회지만 가장 작은 소녀 7살 예원이가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어느 날 설교하고 내려오시자 예원이가 다가와 슬며시 껴안아준다. 그동안 설교하기 수천 번에 맨 처음 여자에게 안긴 할아버지 얼굴에 웃음꽃 가득 피어 잠시 행복에 젖으신다. 예원이는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인가 보다. - 미국 네쉬빌한신교회에서(2019. 8) 동시 2021.02.14
연필로 글을 쓰면 연필로 글을 쓰면 사각사각 소리 들려와 어린 시절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밟고 외갓집 세배 가던 때가 생각난다. 연필로 글을 쓰면 마른 향내 은근히 번져와 어린 시절 멍석에 누워 모깃불 향내 맡고 누나와 별을 헤던 때가 그리워진다. - 제1동시집(1994)에 수록 동시 2021.01.08
반딧불이 1 어릴 적 여름밤 내 꿈을 수놓던 반딧불이 요즘은 모두 어디 갔을까. 농약이 싫어 지구 떠나 하늘로 갔는지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 곱게 반짝인다. 풀무치와 방아깨비와 어울려 놀던 때가 너무너무 그리워 하늘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는 별똥별 하나 또 하나. 달려가 안아주고 싶다. 동시 2021.01.08
얼음 위에 쓴 동시 매섭게 춥던 지난겨울 꽁꽁 언 마을 호수 아이들이 왁자지껄 신나게 뛰놀았지 팽이 치는 아이들 썰매 타는 아이들 스케이트 지치는 아이들 지쳐 눈 위에 눕는 아이들 나는 미소로 지켜보며 솔가지 붓으로 떠오르는 동시를 얼음 위에다 크게 썼었지. 이제 봄이 된 호수에는 푸르른 물이 가득하고 얼음 위에 쓴 내 동시는 사라졌으나 큰 잉어 한 마리 물 위로 크게 솟구치는 걸 보며 아, 나는 기원했다. 내 동시를 먹은 물고기들이 싱싱하고 통통하게 자라 낚시로 사람들 밥상에 오른다면 그걸 먹은 사람들의 마음 모두 동심으로 변할 수 있기를 동심으로 환한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동시 2021.01.08
흰 비단 꽃 길 가로수 벚꽃 모두 활짝 펴 세상이 환한데 간밤 꽃비에 실바람 불어 길마다 덮인 흰 비단 꽃길 지나는 사람마다 기분이 좋다. 아이들은 타박타박 어른들은 터벅터벅 아가씨들은 또박또박 모두 신나게 걷는 하얀 벚꽃 길 아름다운 봄날의 아침 - 계간 사상과 문학(2017 봄호) 발표 - 소솔 제3동시집(2018)에 수록 동시 2020.12.22
출생 줄 하나 의지한 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아아~” 무서워 소리 지르는 번지 점프하는 사람들 탯줄 하나 의지한 채 엄마 뱃속에서 자라다 “으앙~” 무서워 울면서 이 세상으로 뛰어내렸지. 너도 나도 우리 모두 그때 하나님이 빙그레 웃으셨어, - 제3동시집 수록 --------------------------------- 동시 2020.12.11
나와 거울 너를 통해 나를 본다 아직 내 진짜 얼굴 한 번도 본적이 없거든 내가 웃으면 네가 웃고 네가 슬프면 나도 슬퍼했지. 언젠가, 내가 놀란 건 난, 기분이 좋은데 네가 우중충해서 말야 거울을 말갛게 닦고서야 내 얼굴이 환함을 알 수 있었지. 맞아. 내가 즐거우려면 너를 늘 닦아줘야 하듯 나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내가 너고 네가 바로 나니까. - 계간문예 상상탐구 게재(2019) 동시 2020.12.10
에어 쇼 여의도 한강에서 공군 에어쇼가 있던 기쁜 광복절 오후 “야, 신난다!” 비행기가 재주 부릴 때마다 기뻐서 손뼉을 쳤지만 V자로 날아가는 전투기들이 빨강 파랑 노랑연기를 뿌릴 때 정말 황홀하고 멋 있었어요 V자로 날아가는 가을 철새들에게 우리 공군 아저씨들이 한 수 배웠나 봐요. - 계간 사상과문학 발표(2015 여름호) 동시 2020.11.29
눈송이 1 솜털보다 가벼운 눈송이 손에 앉으면 금방 눈물 남기고 떠나지만 쌓이고 자꾸 쌓이면 비닐하우스 폭삭 내려앉히고 강물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고속도로를 미끄럼틀 만들어 차들을 엉금엉금 기어가게 하는 무서운 힘. 누가 그 무게를 알 수 있을까? - 계간 아동문학세상(2004. 겨울) 동시 2020.11.25
별똥별 별이 똥을 싸면 - 와, 멋있다! 감탄한다. 사람이 똥을 싸면 - 에이, 더러워! 싫어한다. 아, 이제 알겠다. 왜 사람마다 별(스타)가 되려고 꿈꾸고 있는지를. - 계간 사상과 문학(2018. 가을호) 동시 202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