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소설의 향기/크리스천 교수의 글 88

내 눈의 들보와 형제 눈의 티

-산상수훈 묵상 36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들보와 티의 크기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티는 본다고 하십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달려드는 나를 당신께서는 더욱 질책하십니다. 외식하는 자여 네 눈 속의 들보를 뽑아라 그래야만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더욱 밝히 보고 뽑을 것이라 합니다. 어리석은 나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 눈의 들보는 나의 허물 형제 눈의 티는 형제의 허물 그런데도 나는 허물없다고 입 싹 닦고 형제의 허물에 거품을 무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가을에는 흰옷을

- 이향아 교수(호남대 명예) 가을에는 흰옷을 입어야지 미풍에 끄덕이며 잎이지는 나무처럼 겸손히 두 팔을 내리고 철없던 젊은 날의 방황은 끝나 모두들 돌아서는 성숙의 계절에 가을에는 달빛 같은 흰옷을 입어야지 육신의 빈궁 영혼의 남루를 당신에게 순종하는 눈물로 채워야지. 쭉정이는 모두 쓸어 불길 속에 사루는 참회의 시간 겸손히 흰옷을 갈아입고 서면 사랑이여,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가을에는 허락하는 이의 깃발 같은 흰옷을 그 순결을 입어야지.

누가 의인義人인가?

산상수훈 묵상 35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사람들로부터 올바른 일 했다고 존경과 사랑 받아도 당신께서 옳지 않다면 의인 아니지요? 아침 마다 폐휴지 줍기 전 당신께 먼저 기도하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리어카 힘들게 끌어도 당신 보시기에 의로우면 그 사람이 바로 의인이지요? 그렇게 모은 돈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난한 자들 위하여 쓰라면서 주민센터 창구에 맡기고 부리나케 빠져 나와 가슴 쓸며 또 당신께 기도하는 그가 방송에 성금 수 억 냈다고 사진 올리며 출석 교회와 직분도 밝히는 스타나 재벌총수보다 참으로 의인이지요.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 박두진 교수(1916-1998)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타올라 미쳐 뛰는 내 안의 마음이 잔잔하고 푸른 강으로 가라앉게 하소서.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노루처럼 비겁한 내 안의 결단이 칼날 진 발톱 사자처럼 영맹히 덮칠 수 있게 하소서.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사막처럼 파팍한 내 마음 메마름에 뜨거운 눈물 연민의 폭포강이 출렁이게 하소서. 아무데서나 당신의 눈에 부딪칠 때 아직도 못다 올린 새 깃발을 위하여 피 흘려 넘어져도 달려가게 하소서.

아버지의 소망

바울 평전 3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너는 예루살렘 성 그 거룩한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너의 그 총명한 머리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벤야민 지파 첫 왕 사울처럼 훌륭한 사람 되어야 한다. 너는 이 아빠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헬라 말로 로마 장군들이나 부자들의 마음 사로잡고 또 사로잡아서 비싼 장막 팔 궁리만 하면서 돈 모으기에 혈안인 나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너는 조상의 땅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 심심할 때면 카누스강 배타고 내려와 큰 바다 지중해 왼쪽 가리키며 나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아버지 그 소망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소망에 어느 새 아버지의 그 소망에 최면 걸리고 있었다.

내 고향 다소

-바울 평전 2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내 유년의 추억 간직한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클레오파트라가 카두누수 강 따라 요정 아포르디테처럼 노 저어와 안토니우스 만나 불같은 사랑 나누었던 그곳. 로마 장군에게 끌려온 노예를 조상으로 가진 아버지 장막 만드는 기술로 재산 모아 로마 시민권까지 얻게 된 그 곳. 강 따라 한참 내려가면 큰 바다 지중해와 만나는데 그 곳으로 나와 유대 땅으로 가라는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장막 기술 익혀 아버지보다 더 부자가 되어 토러스 산맥을 넘어 서쪽 나라 로마로 가고 싶었다. 로마 장군들도 감탄한 그 손놀림으로 돈도 많이 벌고 로마 시민권도 얻게 된 그 기술 익히고 또 익히고 싶었다.

바울평전 1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천사의 얼굴을 한 스데반 집사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에게 돌로 맞아 죽는 그 자리에 나 있었다. 정식 재판도 하지 않고 그냥 성 밖으로 내쳐 돌로 쳐 죽이는 테러리스트들의 책임자가 바로 나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리들 나에게 옷을 벗어 맡기고 분 이기지 못하여 스데반 집사에게 달려들어 돌로 쳐 죽이는 그 자리에 나 있었다. 스데반 집사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마치 십자가 위의 예수처럼 말하며 죽어 가는 그 자리에 나 있었다. *사도행전 7장 59-60에서

염려하지 말라

-산상수훈 묵상 (34)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하늘 아버지께서 공중의 새도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우리를 그냥 두겠느냐면서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의식주를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따라 우리는 아무 일이나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염려를 부추겨 득 보고자 하는 아벨을 죽인 카인 닮은 무리들이 우리를 부추길 때에는 걷잡을 수없이 염려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소금도 사재기 하고 금과 은도 동이 납니다. 어디 이것뿐입니까? 그들의 부추김에 넋을 일어 나라 일까지 그르칩니다. 이러할 때에도 당신의 가르침대로 염려하지 않을 힘주소서. 염려를 부추기는 무리들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우리의 바른 판단력도 주소서.

금식

-산상수훈 묵상 32 - 양왕용 교수(부산대 명예) 밥 굶고 수염도 깍지 않고 슬픈 얼굴로 당신께 무엇 달라고 매달리면 응답주신다고 하는 것이 금식 아니지요. 정치가들이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 걸고 단식하면서 기자들에게 보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우리 삶의 고비에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닥칠 때 먹고 마시는 것도 피하고 만나는 친구들도 피하고 보고 싶은 텔레비전도 끄고 오로지 당신과 단독으로 대화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금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