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8

어린 아이로

어린아이로 - 나태주(1945- ) 어린아이로 남아 있고 싶다 나이를 먹는 것과는 무관하게 어린아이로 남아 있고 싶다. 어린아이의 철없음 어린아이의 설레임 어린아이의 투정어린 슬픔과 기쁨 그리고 놀라움 끝끝내 그것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끝끝내 그것으로 세상을 건너고 싶다 있는 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듣고 본 대로 느낄 수 있는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어린아이의 가슴과 귀와 눈과 입술이고 싶다.

오월의 숲에는

오월의 숲에는 - 최세균 오월의 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하늘과 땅 사이 창세기 제3일을 선언한다. 연초록 빛들이 손을 잡고 걸어 와 배신의 공백을 채우고 나면 날아오르는 새들 다시 알을 낳고 종류대로 새끼를 품으리라. 우리도 새 순으로 우리도 새 눈으로 사랑하는 일 기뻐하는 일 다시해 보라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신록으로 오시는 주님 다시 시작하리라 다시 바라보리라 생명의 환희, 새 창조의 빛으로 축제가 되는 오월 새 하늘과 새 땅이 탄생하고 있다.

꽃잎 인연

꽃잎 인연 - 도종환 몸 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 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 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 만큼 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 만큼 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 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있는 동안은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꽃나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과 같으리.

부활

부활 조남기(1921- 1992) 폭풍 가고 없는 4월..... 따스한 봄길을 걸으며 나도 그대 태양처럼 부활을 바라노라. 다시 살아 찾는 텅 빈 뒤란 길 자비로워 무덤도 주님 입김 백골도 웃음 짓는 해빙의 골목에서 이 생명 다시 사는 부활의 아침 날을 오 주여 이 몸도 그대 몸 다시 살고 싶어 고운 살결 피어오른 그대 얼굴 그리워 무릎 져 오른 하늘 손 모아 기도 드리며 나도 이 한 날을 부활을 그리노라 악착 같은 무덤에서 이 몸도 살고 지고 죽음을 다시 사신 주님을 그리노라.

목련꽃 편지

목련꽃 편지 - 김후란 환하게 길 밝혀 준 목련꽃 아래서 꿈꾸듯 눈부시게 올려다보네 저 하늘 속 깊은 푸르름 앞에 새봄의 첫 손님 걸어 나오네 나는 그냥 서성이다 생각에 잠겨 순백의 꽃 앞에 편지를 쓰네 아, 물 오른 나뭇가지 풀빛 눈웃음 예서 제서 그리움 터트릴 제 목이 긴 여인 목련꽃 편지 그대에게 보내노라 이른 봄소식을 보내노라.

수선화에게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