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5

꽃잎 인연

꽃잎 인연 - 도종환 몸 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 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 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 만큼 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 만큼 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 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있는 동안은 바람 불어 언제나 쓸쓸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도 빗발과 꽃나무들 만나고 헤어지는 일과 같으리.

부활

부활 조남기(1921- 1992) 폭풍 가고 없는 4월..... 따스한 봄길을 걸으며 나도 그대 태양처럼 부활을 바라노라. 다시 살아 찾는 텅 빈 뒤란 길 자비로워 무덤도 주님 입김 백골도 웃음 짓는 해빙의 골목에서 이 생명 다시 사는 부활의 아침 날을 오 주여 이 몸도 그대 몸 다시 살고 싶어 고운 살결 피어오른 그대 얼굴 그리워 무릎 져 오른 하늘 손 모아 기도 드리며 나도 이 한 날을 부활을 그리노라 악착 같은 무덤에서 이 몸도 살고 지고 죽음을 다시 사신 주님을 그리노라.

목련꽃 편지

목련꽃 편지 - 김후란 환하게 길 밝혀 준 목련꽃 아래서 꿈꾸듯 눈부시게 올려다보네 저 하늘 속 깊은 푸르름 앞에 새봄의 첫 손님 걸어 나오네 나는 그냥 서성이다 생각에 잠겨 순백의 꽃 앞에 편지를 쓰네 아, 물 오른 나뭇가지 풀빛 눈웃음 예서 제서 그리움 터트릴 제 목이 긴 여인 목련꽃 편지 그대에게 보내노라 이른 봄소식을 보내노라.

수선화에게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산골 사람(황금찬)

산골 사람 - 황금찬(1918~ 2018) 그는 물소리만 듣고 자랐다 그래, 귀가 맑다 그는 구름만 보고/ 자랐다 그래, 눈이 선하다 그는 잎 새와 꽃을 이웃으로 하고/ 자랐다 그래, 손이 곱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평범한 가르침 선하고 착하게 살아라 네가 그렇게 살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나는 충성과 효도를 모른다. 다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오늘 내가 남길 교훈은/ 무엇일까 나도 평범한 애비여서 선하고/ 착하게 살아라. 사랑하는 아들아, 딸들아 이 말밖에 할 말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