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5

유월의 언덕

유월의 언덕 - 노천명(1911~1957)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 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어머니의 미소

어머니의 미소 - 윤병춘 당신의 날들은 세상의 사나운 바람에 눈물의 언덕길에서도 고운 미소로 태우는 촛불 어둠의 시간 속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고 푸른 종소리 따라 먼 곳으로 떠나간 당신 곁에 있을 때마다 시냇물처럼 맑은 미소는 세상의 어둔 길을 환히 비춘 등불 사랑의 꽃으로 피어난 당신은 세상의 어둔 밤하늘에 별이 되어 지킨다.

가족

가족 - 강재현 맑은 공기나 물처럼 늘 함께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배려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로 가장 큰 상처를 주게 되는 사람들 늘 그 자리에 있는사람들이라고 믿기에 기다릴 필요도, 이유도 없기에 그리움의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사람들 함께 있을수록 더 많이 보아야 할 사람들 가까이 있을수록 더 깊이 보아야 할 사람들 익숙해서 편안할수록 더 살뜰히 챙겨야 할 사람들 더 뜨겁게 서로의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 '가족'이라는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눈물(이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하늘을 보면 생각이..

아버지(김윤호)

낫자루 삽자루를 하도 많이 잡아서 손가락이 대나무 갈퀴처럼 휘었다고 가끔 두 손을 보여주며 웃으시던 주름진 얼굴 대흉년 을축년 봄에는 싸리나무 울타리에 남빛 칡꽃 피워 올린 칡넝쿨을 걷어다 먹고 뒷산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다 먹으며 이어온 모진 목숨 고창 흥덕 장터에 가마니를 내다 팔고 팥죽 한 그릇 사먹지 않고 오다가 길섶 눈밭에 기진하여 혼자 쓰러져 장에 갔다 오던 동네 사람들이 보고 등에 업어 왔다 6‧25 동란 때 밤손님 낮 손님 험악한 살얼음판에서도 등허리에 뿔 두 개가 난 지게 진 사람 만이 용케 살아남았다며 나락등짐 보리등짐에 무명옷이 땀에 절어 헤어져도 보리 알맹이를 위하여 속이 비어가는 유월 누런 보릿대 같은 농부 동지 섣달 긴긴 겨울밤 부엉이 울음소리 멀어질 때 까지 등잔불 심지 돋우며 ..

어린 아이로

어린아이로 - 나태주(1945- ) 어린아이로 남아 있고 싶다 나이를 먹는 것과는 무관하게 어린아이로 남아 있고 싶다. 어린아이의 철없음 어린아이의 설레임 어린아이의 투정어린 슬픔과 기쁨 그리고 놀라움 끝끝내 그것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끝끝내 그것으로 세상을 건너고 싶다 있는 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듣고 본 대로 느낄 수 있는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어린아이의 가슴과 귀와 눈과 입술이고 싶다.

오월의 숲에는

오월의 숲에는 - 최세균 오월의 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하늘과 땅 사이 창세기 제3일을 선언한다. 연초록 빛들이 손을 잡고 걸어 와 배신의 공백을 채우고 나면 날아오르는 새들 다시 알을 낳고 종류대로 새끼를 품으리라. 우리도 새 순으로 우리도 새 눈으로 사랑하는 일 기뻐하는 일 다시해 보라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신록으로 오시는 주님 다시 시작하리라 다시 바라보리라 생명의 환희, 새 창조의 빛으로 축제가 되는 오월 새 하늘과 새 땅이 탄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