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솔이 좋아하는 시와 글 108

쑥국새가 운다

쑥국새가 운다 - 임원식 쑥국 쑥국 쑥국새가 운다 아지랑이 피는 봄 들길에서 어머니 바구니 가득 쑥을 뜯어 보리 섞어 쑥밥 짓고 된장 풀어 쑥국 끓이고 쑥개떡 해주셨지.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가난 연기 배고파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주려 쑥국새 운다. 쑥국 쑥국 해남 들길 지나노라면 코에는 쑥 냄새 스미고 저 멀리 산에서 우는 쑥국새 소리 귓가에 맴돈다.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 미즈노 겐조(1937- 1984)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외로움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걸어가신다. 고민하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고뇌하신다. 기도드리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하신다.

유월의 언덕

유월의 언덕 - 노천명(1911~1957)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 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어머니의 미소

어머니의 미소 - 윤병춘 당신의 날들은 세상의 사나운 바람에 눈물의 언덕길에서도 고운 미소로 태우는 촛불 어둠의 시간 속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고 푸른 종소리 따라 먼 곳으로 떠나간 당신 곁에 있을 때마다 시냇물처럼 맑은 미소는 세상의 어둔 길을 환히 비춘 등불 사랑의 꽃으로 피어난 당신은 세상의 어둔 밤하늘에 별이 되어 지킨다.

가족

가족 - 강재현 맑은 공기나 물처럼 늘 함께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배려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로 가장 큰 상처를 주게 되는 사람들 늘 그 자리에 있는사람들이라고 믿기에 기다릴 필요도, 이유도 없기에 그리움의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사람들 함께 있을수록 더 많이 보아야 할 사람들 가까이 있을수록 더 깊이 보아야 할 사람들 익숙해서 편안할수록 더 살뜰히 챙겨야 할 사람들 더 뜨겁게 서로의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 '가족'이라는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눈물(이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하늘을 보면 생각이..

아버지(김윤호)

낫자루 삽자루를 하도 많이 잡아서 손가락이 대나무 갈퀴처럼 휘었다고 가끔 두 손을 보여주며 웃으시던 주름진 얼굴 대흉년 을축년 봄에는 싸리나무 울타리에 남빛 칡꽃 피워 올린 칡넝쿨을 걷어다 먹고 뒷산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다 먹으며 이어온 모진 목숨 고창 흥덕 장터에 가마니를 내다 팔고 팥죽 한 그릇 사먹지 않고 오다가 길섶 눈밭에 기진하여 혼자 쓰러져 장에 갔다 오던 동네 사람들이 보고 등에 업어 왔다 6‧25 동란 때 밤손님 낮 손님 험악한 살얼음판에서도 등허리에 뿔 두 개가 난 지게 진 사람 만이 용케 살아남았다며 나락등짐 보리등짐에 무명옷이 땀에 절어 헤어져도 보리 알맹이를 위하여 속이 비어가는 유월 누런 보릿대 같은 농부 동지 섣달 긴긴 겨울밤 부엉이 울음소리 멀어질 때 까지 등잔불 심지 돋우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