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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느 한인교회 2

- 정 깃든 소소한 마음 목회하는 사위 찾은 여름 여행 교회당 옆 사택에서 지내며 새벽마다 나가는 교회 기도회 차 몰고 오는 6인 새벽성도들, 정겹다. 기도회 끝난 후 더 기도하다 나와 사택으로 가는 길 옆 우편함 밑 잔디에 가끔 눈에 띤 흰 비닐봉지 하나 궁금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조금 후 딸이 가져 온 비닐봉지엔 배추 한 폭이 들어 있고 어느 날엔 양배추, 무, 깻잎, 도마도 등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채소들 40년 전, 이민 온 어느 할머니 권사가 조그만 집 텃밭 일궈 씨 뿌려 얻은 것들 목회자 가족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마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정겨운 마음 60년 전 한국 농촌교회에서 흔히 있던 미담 오늘 한국의 농촌교회에서도 이미 사라진 꿈같은 얘기, 전설 같은 이야기가 미국 한 작은..

2021.08.05

단숨에 달려 올 사람

-김종기(1939~ ) 소소한 얘길 소담하게 나누는 사람 귀중한 일을 사소하게 주고받는 사람 터놓고 말 놓고 너털웃음 웃는 사람 아침의 햇살을 눈물겹게 반기는 사람 달무리에 숨긴 별들을 건져 올리는 사람 들꽃 한 다발 담뿍 묶어 들이미는 사람 웃어젖힐 일엔 함께 허리 휘는 사람 눈물질 일에는 줄줄이 울어주는 사람 만날수록 담담하고 진솔하고 다정한 사람 대문 열어 놓고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오가며 둘러앉아 밥과 별미를 권할 사람 절대로 고독하게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사람 그대가 어려울 때 단숨에 달려올 사람이 있습니까?

어느 무더운 날의 일기

아파트 관리실 통보 따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정전停電되던 날 103년 만에 찾아 온 무더위 에어컨, 수돗물, TV, 컴퓨터 모두 먹통이 되는 시간 함께 사는 아들 내외와 손녀 12년 만에 모처럼 미국 여행 나는 외톨이 활짝 열린 창엔 바람 한 점 없고 땀이 나고 답답해 현관밖에 나왔으나 아뿔사, 엘리베이터도 중지 어두운 비상구 13층 계단 손잡이 잡고 조심히 내려가는데 갑자기 작은 빛 하나 동시에 세미한 음성 들린다. - 전기 없으면 살 수 없는 인생아, 하나님 은혜 아니면 잠시도 살 수 없는 너! “ 오, 주여, 임마누엘 오소서!” 난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온 몸에 땀과 눈물 흘리며 주님 찾고 있을 때 어느새 마음에 강물처럼 평화 임하고 이상스럽게 덥거나 답답치 않아 집으로 올라가 찬양으로 더위..

2021.08.02

8월의 기도

8월에는 물러가게 하소서 폭서가 물러가고 탐욕이 물러가고 코로나19가 물러가게 하소서, 8월에는 회복되게 하소서 예배가 회복되고 경제가 회복되고 참 자유가 회복되게 하소서. 8월에는 가득하게 하소서 사랑이 가득하고 소망이 가득하고 행복이 가득 하게 하소서. 8월에는 일어나게 하소서 믿음이 일어나고 정의가 일어나고 나라 사랑이 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일어나 새 일을 행하게 하소서.

2021.08.01

어려울 때 ‘홍해의 사건’을 기억하시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을 나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의 군대에게 쫓기게 되고, 건널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 홍해 앞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상황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게 만듭니다. 바닷물이 갈라져 좌우에 벽이 되고, 바다가 마른 땅이 되어 건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추격하던 애급의 군대는 홍해를 건너다 모두 몰살을 당합니다. 우리 또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같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홍해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너무 힘들고 지쳐서 잊고 있었다면, 다시 한 번 홍해 사건을 떠올리시고 하나님을 바..

한국의 간디 김성혁 장로 3

대통령 표창 위해 찾아 간 동 직원을 쫓아내다. 김성혁 교수의 불법과외를 조사하다 오히려 감동을 받은 형사가 본서에 들어갔다. 그리고 서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김성혁 교수의 사설과외는 무인가 불법과외임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단속보다는 오히려 국가가 장려하고 표창해야 할 선한사업임을 깨달았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기 보십시오.” 형사가 가지고 간 뉴스위크와 다이제스트 등 자료와 만나 본 사람들의 진술서 등 자세한 조사내용을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경찰서장이 놀랐다. “그렇다면 동사무소에 연락해서 새마을 성공사례의 하나로, 당국에 보고해서 표창을 상신하도록 하시오. 우리 관내에 처음으로 생긴 경사가 아니요?”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정부의 새마을 사업의 성공..

한국의 간디 김성혁 장로 2

부채(負債)의식으로 시작한 장학사업 김성혁 장로가 이처럼 그의 과외강습비를 대학생 장학금으로 사용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중학생 때부터 선교사의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또 일본유학도 선교사들 장학금으로 공부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었으니,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이 선교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그 많은 영혼들을 구원했듯 김성혁 장로의 가슴에 깊이 박힌 장학에 대한 부채의식은 그의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수많은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을 잇게 했으며, 그 수준을 향상시켜 사회에 공헌케 했다. 또 나중에 그의 도움 받은 사람들은 가난한 학생들 뿐 아니라, 가난한 성도들의 사업자금과 대구 근처의 농촌 미자립 교회나 교역자들,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린 나환자들에게까지 그 혜택이..

한국의 간디 김성혁 장로 1

“1956년부터 30년 동안 당시 대구의 사람들은 경북대학교 근처에서 작은 키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손에는 검정색 손가방을 든 촌로의 아저씨를 보았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채권 삽니다.“하고 골목을 다니던 당시 흔한 채권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1956년부터 거의 30년 동안 대구에 있는 국립 경북대학교 문리대 영어과 김성혁 교수였다. 당시 대구나 경상북도 일대에 ‘괴짜 교수‘ 또는 ’한국의 간디‘라고 알려진 김성혁 교수, 그는 누구인가? 평양 미션스쿨과 동경외국어대학 유학 김성혁(金成赫)은 조선왕조가 일본에 강제 합병된 지 얼마 후, 1916년 11월 4일에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농부의 3대 독자로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영민하고 부지런하게 성장하다 소학교에 입학하여 6년 동안 개근상과 우등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