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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도로로사(via Dororosa)*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아픔 없이 갈 수 없는 통곡의 길 그러나 우리는 눈물 한 방울 없이 걸어갔습니다. 그 분의 핏자국으로 얼룩진 피와 땀 없이는 갈 수 없는 고난의 길 그러나 우리는 땀방울 하나 없이 걸어갔습니다. 이마의 가시관에서 핏방울 흘리며 무거운 십자가 메고 가신 십자가의 길 그러나 우리는 十字架 없이 그냥 올라갔습니다. 가시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무려 일곱 번이나 쓰러지셨다는 탈진(脫盡)의 길 그러나 우리는 힘이 넘쳐 그냥 올라갔습니다. 더러운 흙먼지가 펄펄 날리고 거친 돌들에 맨발이 상하시던 고통의 길 그러나 우리는 고운 돌들로 잘 닦인 길,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오르는 동안 주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더러는 기도도 하고 잠시 슬픔의 마음도 가졌으나 성지순례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걸..

2021.07.26

일상의 기적 2.(박완서 소설가)

일상의 기적 2.(박완서 소설가) 우리들이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안구眼球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腎臟 바꾸는 데는 3천만원, 심장心臟 바꾸는 데는 5억원, 간癎 이식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義手와 의족義足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훌륭한 두발 자가용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 호흡기를 쓰면 한 시간에 36만원을 내..

뜨거운 여름 과일이 더 달듯이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극성을 부리며 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 콘크리트 도시는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사람들은 갖가지 더위 퇴치법을 사용하지만 이내 불볕더위에 짜증을 내고 무기력해집니다. 만일 이런 더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에서 맛있는 과일이 나는 곳은 모두 무더운 여름이 있는 나라들입니다. 만약에 여름에 작열하는 뜨거운 햇볕이 없었다면 달콤하고 향기로운 열매도 없었을 것입니다. 뜨거운 햇볕이 없으면 가을 열매들은 달콤하고 싱싱한 맛을 잃게 됩니다. 사과와 배, 감이 단 이유는 무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무르익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견딜 수 없는 불볕더위가 있고, 햇볕이 작열하는 여름날의 오후와 같은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특히 올 여름은 더 덥습니다. 그..

‘할렐루야’로 일본성서학원 입학한 사람

1907년 7월, 그러니까 지금부터 114여 년 전 일이다. 미국인 카우만과 길보른 선교사가 동양의 선교를 목적으로 일본 동경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 어느 날 이상한 복장을 한 두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여름이어서 시원한 모시옷을 입었는데. 머리는 검은 갓을 쓰고, 갓 속에는 상투를 틀었다. “선생님,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수업을 하다 열려진 창을 통해 이들을 처음 본 일본 학생이 놀라 소리 질렀다. 선교사에게 수업을 배우던 일본학생들이 모두 창 곁으로 달려가 보고 놀랐고, 가르치던 선교사도 이를 힐끗 본 후, 2층 교실에서 1층으로 걸어서 내려갈 때 호기심에 학생들 몇이 따라 내려갔다. 그동안 중국인, 한국인 몇 사람을 이 학교에서 2년 간 무료로 공부를 시켜 전도자로 귀국 시켰는데, 저런 복..

일상의 기적 1

일상의 기적 (박완서. 소설가)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

하루에 4계절 산다면

7월 무더위 짜증나는 계절에 사우디아라비아 맵스에서 일하는 친구 아들이 보낸 카톡 사진과 글 친구가 다시 내게 보내어 살펴본다. 사우디 나라는 열대 무더운 나라 홍해 쪽에 있는 맵스 도시의 기후는 하루에 4계절을 산단다. 이게 무슨 말일까? 아침엔 봄처럼 따뜻해 꽃들이 피고 낮에는 여름처럼 무더워 일 못하고 저녁엔 가을처럼 서늘해 꽃이 지고 밤에는 겨울처럼 솜이불 덥고 잔단다. 처음 한 달 동안 무척 힘들었으나 이젠 하루 4계절의 삶 조금씩 적응 되어 날마다 네 번씩 옷을 갈아입느라 옷장에 4계절 옷들이 가득하단다. 하루에 한 계절 느낄 사이도 없이 금방 계절이 지나가 버리니 허무하고 한국에 있을 때 몰랐던 해마다 4계절 한국의 날씨가 최고란다. 봄이 그리워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여름휴가에 가서 놀던..

2021.07.21

칠월(이수인)

장맛비 그친 하늘 위에 꽃구름 둥둥 피어나고 풀벌레 소리 높여 노래하는 할머니 모시저고리보다 햇빛이 더 쩡쩡한 칠월. 피자두 적포도 청포도 복숭아 한입 물면 새콤달콤한 달 바람이 인색하게 불어도 넉넉하게 살찌우는 칠월, 한 해 반은 감사로 보내오니 남아 있는 소망은 접지 않게 하소서. 멀리서 오고 있는 가을을 위해 나지막히 기도하게 하소서.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유안진)

유안진(1942~ ) 슬퍼지는 날에는 어른들아, 아이로 돌아가자! 별똥 떨어진 그리운 그곳으로 간밤에 떨어진 별똥 주우러 가자. 사랑도 욕스러워 외로운 날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물어보자 개울가의 미나리아재비, 물봉숭아 어린 꽃이 산기슭의 패랭이 엉겅퀴 산나초가 어째서 별똥 떨어진 그 자리에서 피는가를 어른들아, 어리석은 어른들아 사는 일이 참말로 엄청 힘들거든 작고도 순수하게 경영할 불도 알아야지 작아서 아이 같은 고향마을로 가서 밤마다 떨어지는 별똥이나 생각다가 엄마 누나 무릎 베고 멍석자리 잠이 들면 수모도 치욕도 패배도 좌절도... 횃불 꼬리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찬란한 별똥별이 되어주지 않을 꺼나?

우리는 어떤 거울을 보며 살고 있는가?

백설공주라는 동화를 아시지요? 이 동화에서 정말 불쌍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일곱 난장이가 아니라, 바로 질투에 휩싸인 마녀 왕비입니다. 마녀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왕비가 한 일은 바로 거울 앞에 서는 것입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거울은 “왕비님이 제일 예뻐요.”라고 말합니다. 그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교만한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도 거울에게 물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 공주가 제일 예쁩니다.”하고 거울이 말합니다. 왕비는 백설 공주에게 질투를 느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