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152

부활절 묵상

3중의 부활신앙으로 살아갑시다. 오늘이 부활절입니다. 부활절기가 되면 교회마다 사순절과 부활절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을 지내자마자 부활의 의미를 잊어버립니다. 마치 국경일에 기념식을 치르고 이듬해까지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닙니다. 픽션도, 판타지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부활은 추억(remembrance)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reality)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계십니다. 부활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장차 ‘내 육체’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 부활하신 주님과 동..

종려주일의 묵상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거룩한 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Palm Sunday)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영하려고 군중들이 먼저 자기들 겉옷을 길에 폈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 막11:10),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요12:13, 막11:9)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이 종려가지를 들고 환영했다는 사실에서 '종려주일'이란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인류 구원을 위해 죽으시려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로마의 통치를 받던 자기 나라를 해방시키는 제..

자신과 남을 돕는 금식

사순절 묵상4 자신과 남을 돕기 위한 금식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40일 절기입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성찬에 앞서 금식을 행하던 전통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행해지는 금식은 엄격했던 초기의 형태와는 조금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금식보다는 절식(節食)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금식의 목적이 음식의 조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절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절제가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고.’ 먼저 무엇을 중단할 것인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

사순절 묵상3 – 비아 돌로로사

세상이 참 어수선합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더욱 그런듯합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정점으로 치닫고, 대선이 끝났지만 여전히 정치권은 혼란 중에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쟁 중에 있고, 이로 인하여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사명을 따라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세상은 이익과 이권과 권세와 야욕으로 얼룩져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성육신하셔서 죄 많은 인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고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갈수록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지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그 안에서 찾고 찾는 것은 자극적인 쾌락과 즐거움과 이기적인 행복밖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

사순절 묵상 2

성도는 예수 피로 구원 받은 하늘백성입니다. 사순절 세 번째 주간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십자가 앞으로’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 빌라도의 법정부터 골고다의 십자가까지의 여정을 우리 교우들이 직접 그리고 만들어서 전시합니다. 이 거룩한 일에 참여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결국 십자가는 우리의 죄의 무게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인 십자가를 져야만 해결될 만큼 크고 무겁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보면 하나님 앞에 감히 설수 없는 죄인인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우리를 겸손..

사순절을 지내며 1

이제 사순절 두 번째 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영어로 ‘렌트’(Le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봄’을 뜻하는 고대 앵글로색슨어 ‘Lang’에서 유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선 ‘40일간의 기념일’이란 희랍어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주일을 뺀 부활절 전 40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는 절기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숫자입니다. 구약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인들이 출애급 후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고, 인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 유대 광야에서 40일 금식하며 준비하셨습니다. 풀 한 포기 생존하기 힘든 광야에서 삶은 하나의 훈련이었습니다. 200만 명이 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배워야 했던 것..

탐욕을 버릴 때 평화가 임합니다.

어느 분이 ‘전쟁이 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전쟁은 납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이 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은 나지 말아야 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전쟁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쟁은 왜 합니까? 예전에는 영토 확장을 위하여 전쟁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나라 안 사정이 복잡해지자 백성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전쟁하는 사이에 들어서서 이득을 챙기는 나라도 없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며칠 전 러시아가 공격을 했지만 모두가 납득할만한 명분이 아닙니다. 남을 먼저 치는 도발전쟁은 죄악입니..

삼일정신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교회

이번 주간에 삼일절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1919년, 일본의 강점에 항거하여 일어난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삼일만세 운동으로 말미암아 당장 독립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수감되어 큰 고통 받았지만, 이는 민족적 자유를 부르짖은 대 사명이었습니다. 만일 ‘삼일만세운동’ 없이 우리에게 독립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김동호 목사의 표현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보다 더 무모해 보였던 삼일운동. 던지면 깨지고 던지면 깨지고 깨져도 던지고 깨져도 또 던지고....참으로 훌륭한 조상을 가졌다. 자랑스런 조상을 우리는 가졌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계는 우리 민족이 총 궐기한 심일만세운동 소식에 놀라며, 불의에 저항하는 우수한 민..

‘지금’이 황금보다 소중합니다.

'내 바늘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미래와 과거를 나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어두움 속 당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 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선 뒤로 사라진 과거는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시간만이 당신 손 안에 지금 있다. 현재란 바로 그림자가 멈춘 그곳이다.’ 위의 글은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새겨진 글입니다. 대학의 ‘올 소울즈’(All Souls) 칼리지의 해시계에 새겨진 문구로 큰 의미를 줍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도 그것은 여전히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만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기회입니다. 이 ..

심판보다 이해와 사랑으로

우리가 불가능한 일을 표현할 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별 달기’입니다. 이미 달린 별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쉽습니다. 달린 별에 선을 그어 별자리를 만들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망망한 하늘에 별을 달아 놓는 것은 인간으로서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쉬운 일은 남에 대한 비판과 어떤 일을 비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아는 것과 무너진 인격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비판할 수 없다면 죽은 영혼입니다. 그러나 비판만 한다면 해로운 영혼입니다. 자신에게조차 그렇다면 왜 비판하는 이가 책임지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사랑의 샘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유와 창조의 근원적인 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