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205

함께 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아이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오랜만에 자연에 텐트를 치고, 저녁도 먹고. 어느덧 해가 지고 땅거미가 깔리며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텐트 옆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던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왜 낮에는 해만 있는데, 밤이 되면 달도 뜨고 저렇게 많은 별들이 나오는지 알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해는 환한 데 있으니까 혼자 있어도 괜찮지만 달은 캄캄한 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 별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어둠이 번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늘에 돋아나는 달과 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하늘을 보니 쪽배를 닮은 초승달과 그 옆에 환한 별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그 달과 별을 보면..

성숙한 가을신앙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은 지 3년이 되어갑니다. 3년이란 세월 동안 서로의 만남이 제한되어 만나지 못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보면 키가 훌쩍 자랐습니다.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대견스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믿음도 저렇게 훌쩍 자랐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름이 성장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성숙의 계절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신앙이 더 성장하고 또 더욱 성숙할 수 있을까요? 자기의 세계에 몰두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웃으로 관심을 옮기는 것이 신앙의 성숙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전에는 자기중심의 관심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대한 열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영적 성숙의 모습입니다. 다른 이에 대한 관심은 먼저 가까운 가족에서 시작..

가을 마음

가을은 채색의 계절입니다. 푸르던 들판은 황금색으로 물들어갑니다. 조금 지나면 산에서도 길가에서도 울긋불긋 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나뭇잎이 예쁜 색깔로 갈아입는 것은 녹색에 가려 있던 다른 색깔들이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사실 나뭇잎에는 녹색의 엽록소 외에도 빛을 흡수하는 색소로 70여 종의 카로티노이드가 있습니다. 붉은색을 띠는 것은 카로틴이고, 노란색을 띠는 것은 크산토필입니다. 이들 색소는 여름 동안에는 많은 양의 엽록소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습니다. 차고 건조한 기후가 되면 잎에서 엽록소가 분해돼 사라지게 되고, 숨겨져 있던 색소가 눈에 띄게 된다고 합니다. 이들 색소의 분포에 따라 노란색이나 붉은색, 단색에서부터 혼합된 색의 단풍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문득 그런 생각을 ..

가을맞이 새로운 사역 초청 이야기

가을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회에는 두 가지 새로운 사역이 시작됩니다. 먼저, 그레이스 워십입니다. 우리는 매일 예배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꿈으로 목요일 오전 11시에 새로운 예배를 시작합니다. 특별히 그레이스 워십은 이 지역의 30, 40대 여성들을 위한 예배입니다. 우리의 신앙주기를 보면 청년 때까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결혼으로 자녀가 태어나고, 삶이 바빠지면서 그 환경에 맞는 경건의 문화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냥 손을 놓아버립니다. 자연히 하나님과의 관계도, 교회로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홀로 육아를 담당하면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공허감이 찾아옵니다. 이런 일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복음을 통하여 위로하고 회복하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영원한 고향으로

명절에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는데, 고향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자라난 곳입니다. 생명의 발원지요 갖가지 삶의 애환과 추억이 담긴 곳이기에 고향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그리워서 빨리 가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고향을 생각하고 찾아갑니다. 인생 여정이 끝날 때쯤 되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정착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화장을 하지만, 얼마 전에는 객지를 전전하다가도 죽을 때는 고향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고향은 우리네 마음에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우리에게 ‘육신의 고향’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온갖 추억이 스며 있는 ‘마음의 고향’도 필요합니다. 꼭 고향이나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행복한 추석

이번 금요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추석)만 같아라.’ 는 말은 이제 옛날 말이 된 듯합니다. 요즈음은 매일이 추석과 같이 풍요롭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 이유는 풍성한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좀 여유 있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에게 새 옷이나, 새 신발을 마련해 주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추석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평소에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석을 다른 날보다 더 기다리거나 감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추석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평소에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성도인 우리는 더욱 감사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

더욱 사랑하려는 가을 이야기

창 너머로 보이는 석양의 노을이 어제는 유난히 붉었습니다. 그렇게 붉고 아름다운 석양이었으나 어김없이 서쪽 하늘 너머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내게도 올 석양의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올해에 사랑하던 여러 교우들을 떠나보내며 마음 아프고 허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섬기며 돌보고 아끼던 교우들이 주님의 부름 받아 천국으로 가실 때마다,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에 가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목사로서 안타깝고 마음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고, 고통이나 질병, 가난, 배신, 미움, 죽음이 없는 곳인데, 저도 인간이기에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물론 우리는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는 않습니..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의 일부(다음 블로그에서) 1608년 미켈란젤로가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를 그렸습니다. 이는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에 따른 것입니다. 원래 조각가였던 그에게 처음인 회화작업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최선을 다해 를 완성했을 때, 그는 87세의 노인이었습니다. 대작을 완성한 그는 스케치북 한쪽에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라고 썼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완성도 높은 자신의 작품에 안주하지 않고 ‘아직도 배운다’는 그의 그 고백이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이 고백은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제가 아닐까요.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바이러스는 코로나가 아니라, 우리..

서로의 사이에 그분을 모실 수 있다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단어가 ‘거리’입니다. 그 예가 ‘거리 두기’인데, 사회 곳곳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교회도 좌석에 표시를 하고 친교실에 노란 선을 바닥에 표시해 안전거리를 유지합니다. 이제 적당한 거리 두기는 일상 속에 서로를 보호해야 할 덕목이 됐습니다. 지리적인 거리도 있지만, ‘너와 나 사이’ 처럼 정서적 거리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연구한 학자가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사무적 관계의 거리는 120㎝, 친밀한 사람의 거리는 15㎝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입니다. 사무적인 관계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의 거리 두는 게 좋고, 부모와 자녀, 연인 사이엔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친밀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정서적..

하나님의 생기로 창조된 인간의 여름

요즘 신조어 중에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풍요(affluence)라는 단어와 유행성감기(influenza)라는 단어 합성어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보면,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지나침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비만 자체가 큰 질병입니다. 문제는 끝없이 욕심을 부리지만 정작 만족이 없는 마음의 비만입니다. 어느 구도자가 영적성장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 며칠 보내려고 갔습니다. 손님을 방까지 안내해준 수도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넉넉한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그것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영적인 생활이란 “없이 사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없이 사는 법”을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