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205

삼일정신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교회

이번 주간에 삼일절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1919년, 일본의 강점에 항거하여 일어난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삼일만세 운동으로 말미암아 당장 독립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수감되어 큰 고통 받았지만, 이는 민족적 자유를 부르짖은 대 사명이었습니다. 만일 ‘삼일만세운동’ 없이 우리에게 독립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김동호 목사의 표현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보다 더 무모해 보였던 삼일운동. 던지면 깨지고 던지면 깨지고 깨져도 던지고 깨져도 또 던지고....참으로 훌륭한 조상을 가졌다. 자랑스런 조상을 우리는 가졌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계는 우리 민족이 총 궐기한 심일만세운동 소식에 놀라며, 불의에 저항하는 우수한 민..

‘지금’이 황금보다 소중합니다.

'내 바늘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미래와 과거를 나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어두움 속 당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 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선 뒤로 사라진 과거는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시간만이 당신 손 안에 지금 있다. 현재란 바로 그림자가 멈춘 그곳이다.’ 위의 글은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새겨진 글입니다. 대학의 ‘올 소울즈’(All Souls) 칼리지의 해시계에 새겨진 문구로 큰 의미를 줍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도 그것은 여전히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만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기회입니다. 이 ..

심판보다 이해와 사랑으로

우리가 불가능한 일을 표현할 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별 달기’입니다. 이미 달린 별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쉽습니다. 달린 별에 선을 그어 별자리를 만들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망망한 하늘에 별을 달아 놓는 것은 인간으로서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쉬운 일은 남에 대한 비판과 어떤 일을 비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아는 것과 무너진 인격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비판할 수 없다면 죽은 영혼입니다. 그러나 비판만 한다면 해로운 영혼입니다. 자신에게조차 그렇다면 왜 비판하는 이가 책임지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사랑의 샘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유와 창조의 근원적인 힘은 ..

생명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2월의 첫주일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이 지났고, 달력에서 우수(雨水), 경칩(驚蟄) 등의 절기를 보면 벌써 겨울이 녹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수 때는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봄이 됩니다. ‘똑똑똑’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어있던 것이 풀리고 닫혀 있는 게 열리고 굳었던 것이 부드러워집니다. 올해는 3월로 넘어갔지만 경칩이 되면 개구리가 땅속에서 긴 겨울잠을 깨고 나옵니다. 아직 겨울바람이 거세지만 이미 봄이 오고 있습니다. 우수와 경칩은 모두 살아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같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회복시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 꽃 웃음 같습니다.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미 나무마다 조금씩 움트기 시작된 것은 봄의 생명의 기운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본향 향해 꿈꾸며 나아가는 명절

명절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리운 고향 / 고향 땅에 살면서도 그립기만 한 고향 아스팔트 신작로 나기 전 / 소 달구지 타고 학교 가던 길 당인리 발전소 지나 / 용마루 너머 호박 밭을 지나 학교 가던 길 하교 길에 소나기 만나면 원두막에 올라 너른 호박 잎 두드리는 빗소리에 입 다물고 숨죽이던 날 넘치는 개울 건너다 멱 감고 집에 오던 날 / 그 새싹 같은 가슴으로 살던 날 고향에 살면서도 그 고향이 그립습니다. 시인 이주연 목사님의 시입니다. 읽으면서 공감했습니다. ‘고향에 살면서도 그 고향이 그립다’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리는 이번 주간에 ‘설’을 맞습니다. 코로나 시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가면 고향에 대한 그리..

설 명절은 코로나로 멀어진 관계 소통의 기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어느새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코로나19로부터 해방을 기다리며 인내하면서 백신접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는데,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이제는 코로나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굳건하게 이기며 살아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우리 삶에 습관처럼 익숙해 진 것들이 있습니다. 항상 마스크를 착용함으로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되었고, 손 씻기를 계속하며,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사랑도 자제해 왔습니다. 거리두기를 지키는 가운데 실제로 서로의 관계거리가 많이도 멀어졌고,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도 대화를 조심함으로 마음의 소..

하루하루가 엮어져 가는 삶의 역사

조르주 쇠라라는 화가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랑자트는 파리 북서부에 위치한 휴양지인데, 여기에서 평온한 한 낮에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할까요?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서양화지만 가까이서 보면 점묘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점으로 찍어서 표현한 점묘화이기 때문에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림속의 점 하나는 그냥 점에 불과하고 색깔도 무슨 색깔인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 점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속의 하루가 그냥 많은 날 중의 하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 역사가 되고 우리..

새해는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해

오늘 인류 문명의 발전은 수많은 인재들의 노력과 발명으로 이룩한 것입니다.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1847~ 1931)은 세계적 발명왕으로 칭송 받는 인물입니다. 아직 오늘처럼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19세기에 그가 발명한 문명의 이기가 무려 1,000가지나 됩니다. 그 중 한가지만 든다면, 바로 전등을 발명하여 어둔 밤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그 외 영화촬영기 등 아주 많아 인류는 그의 덕택으로 평안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초등학교의 기초교육은 겨우 3개월 뿐 입니다. 입학한지 겨우 3개월 만에 바보라고 선생에게 쫓겨났으나 어머니의 가정교육으로 마침내 발명왕이 된 것입니다. 발명품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 아니라,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이 비로소 탄생합니다. 그는 80세가 되도록 계속 과..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교수신문은 매년 전국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확정하고 발표합니다. 2021년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가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도둑을 잡는 자가 도둑과 한통속이 됐다’는 뜻입니다. 아주 예리한 국정비판입니다. 그리고 2위가 ‘인곤마핍(人困馬乏)’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마음이 더 갔습니다.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한 지 이제 2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기는커녕 더 수렁 속으로 발이 끌어당겨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올해는 여느 때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불안한 소식들도 들려오고, 완치와 회복의 기약은 먼 일처럼 느껴지기..

낮은 곳에 오신 사랑과 평화의 예수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모든 분들에게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은 ‘기다림’의 복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시간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들기만 했던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찾아왔습니다. 성탄절은 따스함이고 축복입니다. 눈 맞으며 예수님의 나심을 알리던 새벽송, 성탄 전날 밤 교회에 모여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던 ‘성탄축하의 밤’, 이 거리 저 거리마다 넘쳐 흐르는 캐롤송과 카드의 물결... 왠지 따스함이 느껴지고 누군가 그리워하는 성탄절기는 아름다운 추억이자, 하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요즘 그 성탄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더 위축되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어느 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