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190

설 명절은 코로나로 멀어진 관계 소통의 기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어느새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코로나19로부터 해방을 기다리며 인내하면서 백신접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는데,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이제는 코로나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굳건하게 이기며 살아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우리 삶에 습관처럼 익숙해 진 것들이 있습니다. 항상 마스크를 착용함으로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되었고, 손 씻기를 계속하며,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사랑도 자제해 왔습니다. 거리두기를 지키는 가운데 실제로 서로의 관계거리가 많이도 멀어졌고,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도 대화를 조심함으로 마음의 소..

하루하루가 엮어져 가는 삶의 역사

조르주 쇠라라는 화가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랑자트는 파리 북서부에 위치한 휴양지인데, 여기에서 평온한 한 낮에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할까요?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서양화지만 가까이서 보면 점묘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점으로 찍어서 표현한 점묘화이기 때문에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림속의 점 하나는 그냥 점에 불과하고 색깔도 무슨 색깔인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 점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속의 하루가 그냥 많은 날 중의 하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 역사가 되고 우리..

새해는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해

오늘 인류 문명의 발전은 수많은 인재들의 노력과 발명으로 이룩한 것입니다.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1847~ 1931)은 세계적 발명왕으로 칭송 받는 인물입니다. 아직 오늘처럼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19세기에 그가 발명한 문명의 이기가 무려 1,000가지나 됩니다. 그 중 한가지만 든다면, 바로 전등을 발명하여 어둔 밤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그 외 영화촬영기 등 아주 많아 인류는 그의 덕택으로 평안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초등학교의 기초교육은 겨우 3개월 뿐 입니다. 입학한지 겨우 3개월 만에 바보라고 선생에게 쫓겨났으나 어머니의 가정교육으로 마침내 발명왕이 된 것입니다. 발명품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 아니라,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이 비로소 탄생합니다. 그는 80세가 되도록 계속 과..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교수신문은 매년 전국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확정하고 발표합니다. 2021년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가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도둑을 잡는 자가 도둑과 한통속이 됐다’는 뜻입니다. 아주 예리한 국정비판입니다. 그리고 2위가 ‘인곤마핍(人困馬乏)’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마음이 더 갔습니다.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한 지 이제 2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기는커녕 더 수렁 속으로 발이 끌어당겨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올해는 여느 때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불안한 소식들도 들려오고, 완치와 회복의 기약은 먼 일처럼 느껴지기..

낮은 곳에 오신 사랑과 평화의 예수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모든 분들에게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은 ‘기다림’의 복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시간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들기만 했던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찾아왔습니다. 성탄절은 따스함이고 축복입니다. 눈 맞으며 예수님의 나심을 알리던 새벽송, 성탄 전날 밤 교회에 모여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던 ‘성탄축하의 밤’, 이 거리 저 거리마다 넘쳐 흐르는 캐롤송과 카드의 물결... 왠지 따스함이 느껴지고 누군가 그리워하는 성탄절기는 아름다운 추억이자, 하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요즘 그 성탄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더 위축되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어느 해 1..

성탄절기와 빛의 사명

12월 22일은 일 년 중 가장 밤이 길고 낮이 짧다는 동지입니다. 추위도 보통 이때를 전후로 해서 점차 강도를 더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낮이 짧고 상대적으로 밤이 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많이 위축되고 얼어붙는 것 같아서 우울증도 부쩍 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지를 시점으로 어두운 밤은 차츰 짧아지고 밝은 낮이 길어지는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입니다. 동지 후 사흘만에 성탄절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뜻이 있습니다. 성탄절기가 왔음을 먼저 알리는 신호가 있다면 바로 불빛입니다. 전통적으로 성탄절기에는 거리의 나무들마다, 집들마다 곳곳에서 다양한 불빛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성탄 시즌이 되면 온 세상은 화려한 불빛들로 가득합니다. 지금 우리도 곳곳에 성..

날마다 활기찬 삶을 위해

우리나라의 말에 ‘숨’과 ‘쉼’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숨은 휴식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숨쉬기는 휴식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숨을 잘 쉬어야 운동도 잘하는 것이고, 숨을 잘 쉬는 것이 또한 휴식을 잘하게 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난 후에 쉬는 것도 하나의 운동, 곧 숨쉬기 운동입니다. 숨 쉬는 것을 왜 운동이라고 할까요? 문득 중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선생님의 가르침 따라 체조운동을 열심히 한 후, 마지막에 숨쉬기운동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선생님은 모든 운동의 기본은 숨쉬기라고 하시더군요. 휴식도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잘 쉬는 사람이고, 정말 잘 쉬는 사람이 운동도 잘한다.”고 하시더군요. ‘산을 오른다’는 말은 동사입니다. ..

감사의 영성과 삶의 활력

헬렌 켈러가 어느 날 숲 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 친구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하자, 헬렌 켈러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눈 뜨고도 두 귀 열고도 별로 특별히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고, 할 말조차 없다니... 그래서 비록 보거나 듣거나 말하지도 못한 헬렌 켈러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약 자신이 단 사흘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이란 제목으로 ‘아틀란틱 먼스리(Atlantic Monthly)’ 1933년 1월호에 발표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경제 대공항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을 잔잔히 위로했습니다. 그래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풍성한 은혜와 감사

이제 추수감사의 계절로 들어섰습니다. 멀린 R. 캐로더스의 “Prison to praise”(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라는 책에서,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를 둔 어떤 청년을 소개합니다. 모든 중독이 그렇지만, 알코올중독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중독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아들 내외가 아버지의 변화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 아버지는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망하고 낙심하는 대신 그냥 감사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셔도, 심하게 주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술 마시다 쓰러져도 주로 집에서 쓰러지니 감사했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에게도 느껴지기..

코로나와 함께 예배회복의 길로

지난 2년 가까이 우리는 코로나와 씨름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팬데믹으로 확산되면서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답답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팬데믹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포스트 코로나 (Post Corona)’를 외치며 소망 중에 지냈는데, 요즘 ‘위드 코로나 (With Corona)’라는 용어가 ‘포스트 코로나’ 용어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은 세계적인 감염병 전문가들이 정한 새로운 용어입니다. 신종 코로나가 완전 박멸되지 않을 것이고, 독감이나 다른 질병과 같이 인류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용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 여러 국가들이 ‘위드 코로나’ 방역정책을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