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149

더욱 사랑하려는 가을 이야기

창 너머로 보이는 석양의 노을이 어제는 유난히 붉었습니다. 그렇게 붉고 아름다운 석양이었으나 어김없이 서쪽 하늘 너머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내게도 올 석양의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올해에 사랑하던 여러 교우들을 떠나보내며 마음 아프고 허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섬기며 돌보고 아끼던 교우들이 주님의 부름 받아 천국으로 가실 때마다,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에 가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목사로서 안타깝고 마음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고, 고통이나 질병, 가난, 배신, 미움, 죽음이 없는 곳인데, 저도 인간이기에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물론 우리는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는 않습니..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의 일부(다음 블로그에서) 1608년 미켈란젤로가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를 그렸습니다. 이는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에 따른 것입니다. 원래 조각가였던 그에게 처음인 회화작업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최선을 다해 를 완성했을 때, 그는 87세의 노인이었습니다. 대작을 완성한 그는 스케치북 한쪽에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라고 썼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완성도 높은 자신의 작품에 안주하지 않고 ‘아직도 배운다’는 그의 그 고백이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이 고백은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제가 아닐까요.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바이러스는 코로나가 아니라, 우리..

서로의 사이에 그분을 모실 수 있다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단어가 ‘거리’입니다. 그 예가 ‘거리 두기’인데, 사회 곳곳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교회도 좌석에 표시를 하고 친교실에 노란 선을 바닥에 표시해 안전거리를 유지합니다. 이제 적당한 거리 두기는 일상 속에 서로를 보호해야 할 덕목이 됐습니다. 지리적인 거리도 있지만, ‘너와 나 사이’ 처럼 정서적 거리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연구한 학자가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사무적 관계의 거리는 120㎝, 친밀한 사람의 거리는 15㎝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입니다. 사무적인 관계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의 거리 두는 게 좋고, 부모와 자녀, 연인 사이엔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친밀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정서적..

하나님의 생기로 창조된 인간의 여름

요즘 신조어 중에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풍요(affluence)라는 단어와 유행성감기(influenza)라는 단어 합성어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보면,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지나침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비만 자체가 큰 질병입니다. 문제는 끝없이 욕심을 부리지만 정작 만족이 없는 마음의 비만입니다. 어느 구도자가 영적성장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 며칠 보내려고 갔습니다. 손님을 방까지 안내해준 수도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넉넉한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그것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영적인 생활이란 “없이 사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없이 사는 법”을 배..

삶이 회복되는 휴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이 겪는 문제도 더 복잡하고 다양해졌습니다. 그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만큼이나 사람들은 지쳐 있습니다. 모두 피곤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지쳐 있는 사람들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당한 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휴가철을 맞아 산과 들과 바다와 계곡으로 소위 ‘휴가’라는 것을 떠납니다. 그런데 휴가가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휴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크리스천으로서 휴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이켄 교수는 그의 명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일과 여가'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공합니다. 그는 영어 알파벳의 R로 시작되는 세 단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R은 'Reflection' 곧 '돌아봄'입니다. 우리..

‘위드 코로나‘ 시대와 우리의 자세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재유행 조짐이 나타나 우리 사회가 다시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모두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은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를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먼저, 세상이 교회를 볼 때 자기들과 ‘다름’이 없으면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합니다. 백신이 없던 지난해 코로나 감염이 두려움으로 밀려올 때, 세상 사람이나 그리스도인이 똑같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똑 같이 겁을 냈다면 ..

코로나 재 확산 극복의 비결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질문은 “코로나 유행은 언제 끝나나요?”일 것입니다. 현대 과학기술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답은 “그것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입니다. 그렇다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유행의 종식 조건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류의 70~80%가 ‘동시에’ ‘고르게’ 면역을 획득한 상태를 수 개월간 유지하면 됩니다. 문제는 ‘동시에’, ‘고르게’ 라는 것입니다. 이미 3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40%의 인류가 아직 한 번도 백신 접종을 못 하고 있습니다. 백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백신 연구개발 위해 엄청난 공적자금을 지원받고도 가난한 국가들을 위해 치료약 복제를 무상으로 허용하지 않는 제약회사들의 탐욕이 있..

고난을 견디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입니다. 여름의 무더위와 장마는 우리를 짜증스럽게 하고 불쾌하게 합니다. 그런데 무더위와 장마는 나무를 자라게 하고 숲을 더욱 성장하게 합니다. 만일 무더위와 장마가 없다면 어떤 풍요와 성장도 있을 수 없고 대기의 정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무더위와 장마와 같은 고난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문이 열립니다. 정채봉 님의 ‘느낌표를 찾아서’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콩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형 콩은 콩나물 장수에게 팔렸고, 아우 콩은 농부에게 팔려갔다. 콩나물 장수에게 팔려 간 형 콩은 행복했다. 어두운 통 속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았다. 잠들기도 좋았고 물도 매일 듬뿍 받아먹었다. 형 콩은 쑥쑥 자라났다. 반면 농부에게 팔려간 동생 콩은 고통스런 나날..

오늘의 맥추감사주일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맥추감사절은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우리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3:14-17, 신 16:9-12). 우리 인간들은 건망증이 아주 심합니다. 그렇게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도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가슴이 에이는 듯했던 큰 슬픈 사건도 세월이 가면 점점 흐려지고 나중에는 아주 잊어버리게 됩니다. 맥추절은 하나님이 친히 구원하신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제정하신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

2022년 맥추감사절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이 한국교회 전통이 된 것은 과거 혹독한 가난을 겪은 우리에게 보리추수의 기쁨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가르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리기 시작한 감사가 계속되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감사 절기가 된 것입니다. 오직 쌀을 주식으로 겨울을 보낸 우리 조상들은 초여름 보리를 추수할 때까지 가장 배고픈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때가 바로 춘궁기라고 불리는 보릿고개인데, 긴 겨울을 굶주림에 시달리며 보리가 자라기만 기다리고 견디었습니다. 마침내 보리가 익어 추수했을 때 살아남은 성도들은 제일 먼저 보리를 들고 하나님께 눈물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신학적 근거도 약하고 역사적 전례도 없는 맥추감사절이 한국교회 토착화된 것은 바로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