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153

불편함으로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비밀

󰋮 The 행복한 생각 󰋮 언젠가 양봉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필리핀 여행을 갔습니다. 필리핀은 거의 사시사철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양봉을 하면 한국에서보다 몇 배는 더 꿀을 얻을 수 있겠다’ 그래서 귀국한 후, 자기의 벌을 가지고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예상대로 꽃 피는 기간이 길고 꽃 종류도 많아 한국보다 몇 배의 꿀을 땄습니다. 많은 이익을 본 그는 돈을 더 투자하여 한국산 벌을 더 많이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벌들이 일년을 지내며 필리핀에는 겨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꿀을 모으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벌들이 꿀을 모으는 것은 꽃이 없는 겨울 먹이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필리핀에는 사시..

‘기쁨의 50일‘을 향하여

󰋮 The 행복한 생각 󰋮 초대교회 때부터 가장 오래 지킨 절기가 ‘기쁨의 50일’(The Great Fifty Days)입니다.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 때까지 50일을 ‘완전한 기쁨과 승리’의 날로 지속했습니다. 사순절이 어둠의 시간이었다면, 부활주일부터 기쁨의 50일은 완전한 빛의 시간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쁨의 50일’ 동안에는 금식은 금지되었고, 회개의 표현으로서의 무릎 꿇음도 허락하지 않고 서서 기도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7주의 기간으로 확대시켜 교회력을 “부활절 후 둘째 주일”, “부활절 후 셋째 주일...”이 아니라 “부활절 둘째 주일”, “부활절 셋째 주일”로 했습니다. 부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삶

󰋮 The 행복한 생각 󰋮 오늘이 부활절입니다. 교회마다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내며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합니다. 그런데 매년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을 보내자마자, 마치 국경일 기념식을 치르고 곧 잊어버리는 것처럼, 부활의 의미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었던 자에게 다시 생명이 돌아와 죽음의 자리에서 살아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려면 먼저 ‘3중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는, 역사적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실존적 부활입니다. 십자가 부활이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나의 십자가, 나의 부활 사건이 됨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는, 현재적..

종려주일은 주님 고난이 시작되는 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를 유월절 절기로 잡으셨는데,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며 어린양을 희생 제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인류구원 위해 죽으시려 들어오시는 주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로마의 통치에서 민족을 해방시키는 제2의 다윗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호산나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는 환호가 바로 그걸 말해줍니다. 이 말은 ‘예수 왕 만세’, ‘왕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하는 정치적 구호입니다. 그들은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이 종려..

신앙생활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됩니다

󰋮 The 행복한 생각 󰋮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여정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단어는 ‘내려놓음’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가야 할 방향도 보이지 않고, 해결책도 보이지 않습니다.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깊이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때에 내려놓는 것이 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착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바르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의 노력을 포기할 때,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시작됩니다. 노력과 수양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내려놓으면 성화가 시작됩니다. 선택이 없는데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몸부림을 칩니다. 선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

새로운 봄 이야기

󰋮 The 행복한 생각 󰋮 저희 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개학 때가 되면 매우 긴장한 걸 보았습니다. 밀렸던 한 달 치 일기를 하루에 다 씁니다. 그러니 쓸 내용이 없습니다. -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공부 좀 하다 놀았다. 동생과 놀아 주었다..... 저녁에 텔레비전 보다 잤다‘.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종종 제법 길게 쓴 날도 있습니다. - 오늘은 속이 상한다. 화가 난다. 그리고 슬프다....‘ - 오늘 아빠한테 혼났다. 동생하구 싸웠는데.... 동생이 나한테 대들어서 그랬는데.... 아빠는 나한테만 야단을 쳤다. 아빠는 맨날 동생만 위해준다. - 엄마는 아들이라고 오빠만 늘 위해준다. 나만 늘 꼴찌다. 방학 숙제 안 했다고 야단치고....‘ 설움과 한이 사무친 날은 쓸 거리가 많습..

‘나는 십자가로 충분합니다’

󰋮 The 행복한 생각 󰋮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의 이라는 그 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바로 위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이전의 십자가 그림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눈으로 십자가 밑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에는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 군중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한 여인들이 나옵니다. 십자가에 6시간 동안 달리신 주님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셨을까요?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최강의 로마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칼이 있었고 제국의 권세가 있었기에 오만방자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가장 독한 말로 예수를 공격한 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 The 행복한 생각 󰋮 지난주 수요일은 삼일절이었습니다. 이 땅을 강제로 점거한 일본의 무력에 맞서 1919년에 우리 민족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었지요. 그 당시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약 4백만 명이 무저항 투쟁을 했습니다. 일제는 총을 발사하여 숨진 이는 7천5백여 명, 부상자 1만 6천여 명,검거된 이는 4만 7천여 명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에게 삼일 만세운동이 광복절보다 더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광복절은 우리가 아닌 세계 2차대전의 결과로 주어졌지만, 삼일절은 우리가 주체 되어서 우리의 독립을 크게 외쳤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많은 사람이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하면서, 저항보다 현..

사랑하고 순종하고 절제하는 40일

󰋮 The 행복한 생각 󰋮 며칠 전 22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해서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재의 수요일’은 종려나무 잎을 태워 재를 만들어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회개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사순절’(四旬節)의 영어 ‘렌트’(Lent)는 ‘봄’을 뜻하는 고대 앵글로색슨어 ‘Lang’에서 유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선 ‘40일간의 기념일’이란 희랍어 ‘테살코스테’를 따라 번역했습니다. 이는 주일을 뺀 부활절 전 40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는 절기입니다. 40이란 수의 성서적인 의미는 바로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40일 동안 금식한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40일 동안 사막을 횡단하여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 The 행복한 생각 󰋮 우리 인생에 고난과 고통은 늘 가까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 모두는 당황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알기 원했고, 곧 해결책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고난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유와 원인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이번 튀르키예(터키)에서 일어난 지진을 보면서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런 재난이 일어났는가?”하고. 성경에,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 이 눈먼 사람이 태어난 것은 이 사람의 죄인가요? 부모의 죄 때문인가요?” 제자들의 질문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인생관, 즉 인간의 고통을 죄의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가 아니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