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의 단상 164

대림절,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 The 행복한 생각 오늘부터 교회 절기는 대림절(혹은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Advent)이란, ‘도착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 되었는데, 교회에서 성탄절 전(前) 4주간 예수님의 오심을 대망(大望)하는 절기입니다. 태양력으로 1월을 시작으로 새해가 시작되지만, 교회력은 대림절로부터 새해가 시작됩니다. 대림절의 의미는 ‘기다림’에 있습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숱한 민족적 고난 중에도 예언자들의 말씀 따라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음에도 그들 가운데 소수만이 메시아를 영접했으며, 심지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예수 메시아가..

신앙생활과 월동준비

󰋮 The 행복한 생각 󰋮 지난 주간 마포대로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부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떨어졌습니다. 그 나뭇잎들은 아직도 푸른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보통 낙엽은 푸른 이파리들이 찬바람을 맞으면 이내 갈색으로 변했다가 늦가을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겨울의 찬바람 앞에 채 준비도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푸른 낙엽들을 보면서 안타까워 했습니다. 단풍과 낙엽은 활엽수 나무들의 생존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무들이 월동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을 지날 때 나무들이 생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목질이 단단해지고 뿌리가 튼튼해집니다. 봄이 다가오면 나무마다 새 움 이 돋아납니다. 동식물 모두에게 겨울은 내면이 충실해지는 계절입니다. 우리 인생도 겨울을 준비합니다. ..

감사하는 분이 세상을 행복하게 합니다

󰋮 The 행복한 생각 󰋮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요즘은 ‘감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참 어렵기도 합니다. ‘감사하고 사십시오.’라고 하면, ‘요즘 감사할 게 뭐가 있습니까. 제 형편을 보세요.’하고 대답하면, ‘감사를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홈페이지에 ‘감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감사에 대한 언어 해설은 있는데, 감사에 관한 책은 기독교의 서적 외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요즘 ‘감사’라는 가치가 사회에서 정말 인기 없구나 싶었지만,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감사’는 분명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어떻게 이 가치를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요? ​감사는 ‘당연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당연하거나 허투루 여길 것들..

감사와 감사주일

󰋮 The 행복한 생각 󰋮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주일이니까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에 감사주일이 됩니다. 문제는 감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를 가로막는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애물들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까? 첫째는 ‘당연’이라는 장애물입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지키시고 허락해 주신 덕분에 물질도, 건강도 누리고 성공도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인생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감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둘째 장애물은 ‘비교’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이 ..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이룹니다

󰋮 The 행복한 생각 󰋮 이제 11월입니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그림이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저녁 종’이란 작품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그림입니다. 노을 진 들판 위에 한 가난한 부부가 서 있습니다. 온종일 고된 농사 끝에 그들이 얻은 것은 몇 알의 감자 일뿐, 궁핍한 삶입니다. 그러나 저 멀리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을 모읍니다. 가난하지만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는 모습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감사는 오늘의 현실을 넘어 하늘의 풍성을 누리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지금 무언가로 속상하고 부러워하고 두려워한다면 먼저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할 것들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 감사로 ..

교회는 사경회로부터 부흥됩니다

󰋮 The 행복한 생각 󰋮 한국기독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기독교가 대표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한국기독교 성장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는 성경 번역으로 시작해 성경을 보급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심혈을 기울 였고, 말씀을 통해 변화된 초기 신앙인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열정은 ‘사경회’ 운동을 태동시켰습니다. 사경회(査經會)란 사전적 의미로 ‘일정한 기간 동안 교인들이 성경 공부를 하거나 성경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하여 모이는 모임’입니다. 요즘 사경회는 길어야 사흘, 또는 주일이나 수요일 저녁예배를..

성숙한 신앙의 계절

󰋮 The 행복한 생각 󰋮 꾸미는 사람이 있고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꾸미는 일은 자기 겉모습을 포장이나 화장을 해서 다르게 보이기 위한 가장이나 위장입니다. 그러나 가꾼다는 것은 겉모습이 아닌 내면이나 본질적 속성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뜻입니다. 꾸미는 사람은 외면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고, 가꾸는 사람은 내면에 중심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는 크게 다릅니다.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하는 음식이 있듯이 꾸미는 사람은 점점 부패해서 사라지고, 가꾸는 사람은 발효되어 익어 갑니다. 따라서 신앙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종교적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마치 배우처럼 연기演技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와서 기도 잘 하는 ..

교회 창립 66주년을 맞아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66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기대대로 잘 세워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돼야 합니다. 미국 예일대학의 교회사학자 라토렛(Latorette)교수가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를 기록하면서 인상 깊은 글을 남겼습니다. “초대교회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힌 바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스토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아무나 볼 수 있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삶의 이야기.... 그들에게는 지식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프로그램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조직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후원도..

답답한 현실에서 창문이 되신 하나님

󰋮 The 행복한 생각 “When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주님이 문을 닫으시더라도 어디엔가 주님은 창문을 열어두신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유명한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이처럼 모든 상황을 행복으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꽉 닫혀버리는 문을 바라보면서 어디엔가 하나님이 문을 열어두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엔 분명한 확신,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행복한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상황이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실망 하지 않는다고 말..

영원한 본향 향한 꿈을 꾸며

󰋮 The 행복한 생각 󰋮 헤밍웨이의 소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스페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을 찾기 위해서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그날 아버지가 약속 장소에 나갔을 때, 파코라는 이름 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 부재’ 현상은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의 근본적 원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가 찾고 기다리던 우리의 고향, 우리의 아버지시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 바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