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

어느 날의 기도 3

- 채희문 사람들과 말이 안 되는 날은 훌쩍 산으로 가게 하소서 깊은 산 바위 큰 바위에 올라 이름 모를 새들과 만나면서 바람소리와 지내게 하소서. 시름시름 시름만 겨운 날은 강이나 바다로 떠나게 하소서. 흐르는 물살과 파도의 물이랑을 보며 천만년 인고의 물결을 배우게 하소서. 산과 강과 바다와도 얘기가 안 되는 날은 세상 믿을 것이라곤 없는 날은 하늘로 향하게 하소서 떠가는 흰 구름을 지나 그 구름 사이로 깊이 열리는 빈 하늘을 갖게 하소서. 그런 어느 날 당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을 내리시어 나의 차거운 빈손을 맞아 주소서.

2022.10.29

가을의 언어

- 석우 윤명상 옹알이하던 가을이 이제는 자신의 언어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는 계절이다. 높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그 하늘을 품은 호수와 울긋불긋 산과 들의 단풍들, 가을걷이로 마음을 비운 들녘과 바람과 갈대와 고추잠자리. 하는 말마다 예쁜 말만 늘어놓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가을의 언어다. 가을이 말하고 있는 인생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의미에 대하여 나도 가을 속의 한 단어이고 싶다.

2022.10.28

‘천년향’ 앞에서

- 유소솔 세상일에 찌든 영혼들 고요 찾아 가는 길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 형형색색 가을 꽃잎에 감탄하다 이 수목원의 보물 ‘천년향’ 앞에서 가슴 설렌다. 비바람 눈보라 헤치고 백년고개 열 번 넘어 오느라 세월 무게에 등이 좀 굽었으나 아직도 의젓하고 품위 있는 향나무 모든 노인들은 닮고 싶다. 얼마나 그리우면 우리를 천년 동안 기다렸을까 감동의 물결에 젖은 노인네들 천리 밖에도 찾아가는 그대 향기 우리도 천년향의 한 자락 되어 세상에 그윽한 향이 되리라.

2022.10.21

추억 같은 가을 날

- 김용호 열어놓은 내 마음사이로 맑은 가을 햇살이부드럽게 드나들며 따뜻한 가슴 두근거리게 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이제껏 누굴 못 만난 까닭입니다.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추억 같은 낙엽 지는 멋진 가을 길이 내 동그란 미련을 되살려 줘 마음은 불어갈 가을바람이 됩니다 바람을 맞이해 줄 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추억 같은 가을 날 동그랗던 그리움과 동행하며 낯모르는 타인으로 있을 그대와 고운 인연을 맺기 위해 낙엽 길을 걸어 나서렵니다. 나그네를 납득해 줄 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2.10.20

가을에는

- 윤봉춘 가을 바람이 불면 자꾸만 슬픔에 젖어 잎새들이 곱게 물들고 그리움의 파도가 넘실거립니다. 그리움이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일 때면 당신이 그리워 신부처럼 들뜬 마음은 은하수 흐르는 하늘에 두둥실 떠올라 보름달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잎새들이 떨어지기 전에 당신의 마음을 닮아 당신의 가슴에 피는 꽃처럼 단풍처럼 붉게 물든 그리움으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2022.10.12

산이고 싶어라

- 서정원 찌들고 찌든 삶의 먼지 다 털어내고 파란 바람으로 휘파람 불며 가슴 가득 맑은 공기 채우는 산이고 싶어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팔을 벌리고 온 몸으로 차별 없이 반기는 산이고 싶어라. 꽃이 피면 그 발 아래 향기를 깔고 세상에 눈 멀고 귀 먼 산이고 싶어라. 꽃이 지면 그 발 아래 꽃잎을 흩날리면서 세상에 기쁨주고 낭만 주는 산이고 싶어라.

2022.10.10

한글(김영진)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봐도 한글만큼 크고 높은 글자는 없다 한글, 그 이름만으로도 우주를 가득 채우지 않는가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하여 훈민정음으로 이름을 붙였다. 최만리는 장차 없어질 오랑캐 글자라고 낮추어 언문이라고 했다. 한자가 아닌 우리말로 큰 글이라는 뜻의 ‘한글’로 이름 짓기는 사백 년을 훌쩍 넘겨서야 주시경 같은 학자들이 새 이름을 지었다.

202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