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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를 보며

권은영(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 여름 가득 채운 재산을 다 주고 자리를 지키고 서서 여저기 웅성대는 세상의 어둠을 지켜보고 있다. 흰서리 내릴 때까지 거두었으면 새들 벌레들을 위해 조금 놓아두지 않고 밭고랑에 떨어진 이삭까지 움켜쥐는 세상의 손과 발들을 보고 있다. 아무리 새벽마다 십자가 아래 엎드려도 그 욕심을 잡고 있으면 호리병 속에서 움켜쥔 손을 빼지 못하고 세상의 어둠 속에 빠진다. 빈손은 무엇이든 다시 쥘 수 있다 다 주고 내려놓고도 자리를 지키며 봄은 다시 온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2023.01.16

오늘

구 상(1919~ 2004)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소솔) 구상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일본 니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일제 치하 북한 원산에서 광복을 맞았다. 그는 1946년 첫 시집을 출판했으나 공산당을 비판했다는 비난을 받자, 38선을 넘어 한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언론인과 시인으로 한평생 고결한 삶을 살아 한국 문학계에..

2023.01.10

가슴에 흐르는 물

- 조신권 교수(연세대 명예) 가슴에도 물은 흐른다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가슴에 흐르는 물은 골짜기에서 연원된 물 아닌 하늘에서 시원 된 사랑의 샘물 사랑이 물처럼 흐르지 않으면 설거지물만 흐르는 하수구 되리라. 하수구의 오수 더럽고 고약하듯 사랑도 흐르지 않고 정체되면 썩고 구정물처럼 악취 풍기리라. 가슴의 물 흐를 때만 생명수 나의 사랑 그대는 생명의 샘물 그 물가에서 멱 감으며 살리라.

2023.01.09

나의 소망

- 황금찬(1918-2018)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 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로운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광명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이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선한 도덕과 착한 윤리를 위하여 이 해에는 최선을 다하리라. 밝음과 맑음을 항상 생활 속에 두라 이것을 새해의 지표로 하리라. ---------------------------------------------- (소솔) 강원 속초 출생, 일본 다이토대학 중퇴한 한국 최초 101세 시인으로 유명하다 월간 문예(1953), 현대문학(1955)으로 등단하여 첫 시집

2023.01.02

12월의 기도

김남조(원로 시인) 찬바람이 목둘레에 스며들면 흘러가는 강물 같은 시간의 흐름 앞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여울목 이룹니다. 한 해가 저무는데 아직 잠 잘 곳이 없는 사람과 아직도 병든 자, 고통 받는 이들과 하늘 저 편으로 스러질 듯 침묵하는 자연에 압도되어 나는 말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때 가슴 가장 안쪽에 잊었던 별 하나 눈을 뜹니다. 그 별을 아껴 보듬고 그 별빛에 꿈을 비춰보며 오늘은 온종일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위하여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