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창 하늘의 창 - 김기동 온 세상이 다 막혀도 하늘의 창 하나는 열려 있어 세상의 창이 먹구름에 가리워도 오직 하늘의 창 하나는 열려 있어 절망의 비상구에서 시인은 새벽마다 하늘의 창을 엽니다. 시 2022.09.22
벌레울음 - 신규호(1938-2022) 9월부터 울어대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벌레들 그것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몰라도 가을벌레소리가 울음으로 들리는 건 사람들 모두 슬프기 때문이다. 삶이 즐겁다 하는 마음보다 슬프다 하는 마음이 인생을 값지게 한다는 역설 나도 잘 울어야 할 것임을 이 가을 깨닫게 하는 저 벌레소리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시 2022.09.19
구월의 바람 구월의 바람 - 박종권 사랑 냄새가 난다 초롱한 별들 언덕에 올라 도란거리고 촛불은 든 초저녁 머슴아이들 어슥히 함函 사라고 외친다. 오, 황금빛 들녘 달 바가지 밑에 걸린 된장국 살맛나는 바람 사람 냄새가 난다. 시 2022.09.15
달빛 기도 한가위에 -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 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걸러 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 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주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시 2022.09.10
추석 전날 밤 송편 빚을 때 추석 전날 밤 송편 빚을 때 - 서정주 추석 전날 밤 마루에 앉아 온 식구 모여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도 더 밝아지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 올빼미는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시 2022.09.09
가을의 기도 - 김현승(1913-1975)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기름진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1956년 작 시 2022.09.08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움과 기다림 - 이외수(1946 ~ 2022) 그리움은 과거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흩날리는 나무이고 기다림은 미래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흔들리는 꽃잎이다. 멀어질수록 선명한 아픔으로 새겨지는 젊은 날의 문신들. 시 2022.09.05
들꽃(고은) 들 꽃 - 고은 (1933- ) 들에 가 들꽃 보면 영락없지요 우리 겨레 은은한 품성 영락없지요. 들꽃 몇 천 가지 다 은은히 단색이지요. 망초꽃 이 세상꽃 이것으로 한반도 꾸며놓고 살고지고요. 금낭초 앵초꽃 해 질 무렵 원추리꽃 산들바람 가을에는 구절초 피지요. 저 멀리 들국화 피어나지요. 이런 꽃 피고지고 복이지요. 이런 꽃 피고지고 우리 겨레 복이지요. 들에 나가 들꽃 보면 영락없지요. 시 2022.09.03
9월의 기도 9월의 기도 - 정요세 길고도 길게 늘어진 서러운 더위만 머무른 흔적 다 지우시고 태양빛 찬란한 코스모스 춤추는 9월이게 하소서. 바람이 휘몰아쳐 지나간 자리 홀로 서 있게 하지 마시고 알알들이 영그는 가을이게 하소서. 마음과 생각에 가득 찬 욕심보다 배려가 철철 넘치고 모든 것 다 포용하는 계절이게 하소서. 9월엔 후회할 것 없는 모두의 가슴마다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지천으로 펄럭이는 가을 부끄럽지 않은 그리움이게 하소서. 시 2022.09.01
걸레 같은 사람 걸레 같은 사람 - 홍성훈 처음부터 걸레로 태어나지 않는다 자기 이름으로 사명을 마치고 헤지고 닳아 버려질 때 걸레라는 이름으로 봉사를 한다. 구석구석 고루고루 악취와 더러운 곳을 닦아주는 걸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비단 같은 사람보다 걸레 같은 사람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사는 인생이다. 시 2022.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