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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랑이었다

벚꽃이 튀밥처럼 속속 피어나는 2003년 어느 봄날이었다. 전남 함평 읍 어느 3층에 세 얻어 교회를 개척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주일 오후마다 아내와 함께 인근 종합병원 입원실을 방문, 병실마다 다니며 환자들의 치유 위한 기도와 주님 영접을 위한 권면을 했다. 하루는 그 일을 마치고 병원 3층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보니 서울의 Y장로였다. 사연은, 다음 주일 오전에 자기 교회에 와서 설교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그건 오시면 얘기하겠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 5시까지 부부가 함께 청0동에 오셔서 전화주시면 모시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몇 사람 되지 않은 신자들을 위해 아내 친구인 협동여전도사에게 주일 설교를 맞기고, 그 주간 토요일 오전에 서울행 기차..

수필 2020.12.18

미수를 향한 등정

2019년 1월 25일에 산수傘壽를 맞았다. 작년에 교회에서 자녀들 후원으로 기념예배를 간단히 드렸기에, 산수에도 특별한 기념행사도 없이 교회에 감사헌금을 드리고 조용히 지나면서도 지난 날을 돌아보니 어떤 감격스러움이 조용히 찾아왔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나이를 의식하지 않듯 내가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40을 넘으면서 부터였다. 그때 어느 회갑연에 갔다가 처음으로 나도 회갑을 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 길 가려면 많은 고개를 넘듯 인생길에도 넘어야 할 몇 개의 큰 고개가 있다. 그 고개는 회갑 이후부터 이름이 붙여진다. 회갑(60)- 고희(70)- 희수(77)- 산수(80)- 미수(88)- 백수(99)라는 고개이다. 고희는 고래희(古來稀)에서 온 말로 70세 넘기가 어렵다..

수필 2020.12.17

윤동주와 송몽규의 우정

며칠 전, 한국명시선집을 읽다가 윤동주의 ‘서시’에 이르렀다. 그냥 외울 수 있기에 그의 ‘서시’를 보지 않고 소리로 낭송가의 심정으로 낭송을 했다. 그 순간 문득 그의 ‘시비’가 세워진 중국 용정의 대성중학교의 뜰이 나타나며 어떤 감회에 잠시 젖기도 했다. 나는 2001년에 중국동포사랑방문단의 일원이 되어 북경과 조선족 자치주 길림성의 수도 연길延吉을 다녀왔다. 문인으로 구성된 우리 방문단은 스케줄에 따라 북경에서 조선족 문학인들과 만나 시로 서로 교류한 후, 조선족의 문학적 고향이고, 옛 우리조상의 독립운동 무대였던 용정龍井을 다니며 감동에 젖은 하루를 보냈다. 특히 민족의 시인 윤동주尹東柱에게 사상과 문학을 일깨워준 옛 은진(오늘의 대성)중학교를 방문하면서 운동장 중앙에커다란 바윗돌에 새겨진 그의 ..

수필 2020.12.15

나의 자화상

어렸을 때, 나는 이웃 사람들에게 바로 아래 동생과 자주 비교되기도 했다. 이웃 여자 어른들이 가끔 우리 집에 오면 내가 예쁘다는 사람, 동생이 예쁘다는 사람들로 나뉜다. 둘 다 남자이기 때문에 예쁘다는 말이 거북하여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미소 짓고 말았다. 중, 고교를 다닐 때까지 더러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이어서 여자 같으면 그런 말에 민감하겠지만, 남자라서 그런지 별로였다. 1955년 고교 시절에 처음 문학상에 당선된 후, 학교문예부원 활동을 했다. 마침 시내 6개 고교생 연합문학클럽에 참가하여 유명한 문인들의 문학 강연도 듣고, 또 자작시 낭송도 했다. 그 때 나는 어느 여학생으로부터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처음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본 사연은 역시 레브레타였다...

수필 2020.12.14

하늘이 땅되어 오신

스튜어디스가 따라 준 커피 한 모금 들고 창밖을 내다본다. 1월 중순, 오늘 따라 맑은 날씨였는데 어느새 함박눈으로 가득하다. 아, 그것은 눈이 아니었다. 하얀 솜뭉치처럼 뒤엉켜 끝이 보이지 않은 구름바다 구름 위에서 쳐다 본 하늘 코발트빛 청아한데 구름 밑 인간의 세계, 텁텁한 계절의 바람이 오늘도 강하게 불고 있겠지. 하늘과 땅 죄악의 담으로 막힌 공존할 수 없는 두 세계. 그러나 하늘이 땅되어 오신 나사렛 사람 때문에 하늘과 땅은 마침내 하나가 되지 않았던가. “여기는 고도 7,800미터입니다.” 아나운스멘트가 울리고 구름 속을 헤집고 하강한지 20여 초. 마침내 푸른 산줄기가 들어나고 인가人家들이 점점으로 찍혀 온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산천 내가 배우고 일하는 대지 나사렛 사람 그 분이 그토록..

2020.12.14

꽃송이 아기의 꿈

오늘도 인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갔습니다. 유치원이 먼발치에 보이자, 인수가 생각난 듯이 말했습니다. “엄마, 내 여자동생 하나 낳아주면 안돼요?” “뭐, 여자동생?” 인수엄마가 놀라며, 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우리 유치원에 선희가 있는 데요. 너무 예뻐서 내 동생했으면 해요.” 그제 서야 인수엄마는 무슨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 인수도 여자동생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야.”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 아기는 생겨야 낳지, 생기지 않으면 낳을 수 없단다.”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데요?” “엄마 배를 봐. 아기가 생기면 불룩하거든? 그런데 아직 엄마는 배가 불룩하지 않잖아.” “그럼, 언제 배가 불룩한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나님이 주셔야 하니까.” ..

동화 2020.12.13